무관성 팔자

by 정릉밈씨

무관성 팔자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팔자에 '관'이 없다는 뜻으로 여성이 전업주부인 게 당연하던 시대에 여성의 사주에서 '관'은 '남편'을 의미했고, 현대에 와서는 '직장'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무관성 팔자다. 남편의 가정폭력 사건은 사회봉사 활동 24시간 이수로 처분이 내려졌고, 이어 이혼소송까지 남편의 외도로 책임을 물어 종지부를 찍고자 하던 무렵, 나의 '관'은 떨어질락 말락 나를 격렬하게 흔들어댔다. 남편은 목 부분을 쳤는데 생채기는 팔에 있음을 이유로 들어 거짓으로 가정폭력 혐의를 씌운 것이라 했고, 배우자 유기, 외도는 나의 집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 A양의 진술은 협박에 의한 거짓 진술이라 주장하였다. 나를 향한 재산 분할 요청 내역에는 내 부모님이 내 명의로 마련해두었던 재산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법원은 대립하는 양쪽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후에 판결을 내려야만 했다. 그와 그의 변호사 군단이 궤변을 변론할 기일을 얻어 판결이 지연되어가던 그때, 나의 또 다른 '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어느 한 창작 플랫폼에서 광고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작은 업체였기 때문에 정부에서 제공하는 온갖 지원비로 운영되고 있었고, 인력 중 상당 인원은 방학 중에 잠시 근무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이거나 병역 특례 중인 어린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냥 웬 나이 많은 아줌마였다. 이혼 소송하며 하루하루 할 일 하며 1년 정도 보냈을까, 타 팀의 한 친구가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다.

"저희 총괄 부장님이.. 광고를 빌미로 한 사기꾼이시라고.. 찍어내야 한다고....."

총괄 부장이라 함은 얼마 전에 진급한 병역 대체 중인 개발자였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서비스 업체들에서 러브콜을 보낸 사람인데 우리 회사에 큰 애정을 갖고 있어 거절했다 들었다. 총괄 부장이 되면서 내 위로 내가 조용히 묻어갈 수 있는 존재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아 환영하던 참이었다.


"TV 광고도 할 수 있는데 매번 온라인 광고만 하고 계시 댔어요."

─ "저희 광고 비용으로 TV 광고 못 합니다."

"대행사랑 담합해서 광고 수수료를 빼돌리고 계시 댔어요. 보고서 수치도 조작하고 계시 댔어요."

─ "네? 그 금액을요?ㅋㅋ 처음부터 대시보드 계정 공유해 드렸고, 매주, 매월, 보고서 작성해서 드리는데 한 번도 안 보셨나 봐요. 제가 회의 때 따로 설명도 드렸었던 것 같은데요."

"원래 대행사에서 디자인 대행까지 해주는 건데, 오히려 내부 디자이너들에게 업무로 줘서 부서원들 힘들게 하고 있다고, 우리가 갑인데 대행사에 고개 숙이고 있는 거랬어요."

─ "하.. 저희 비용으로는 디자인 대행 요청도 못합니다. 추가 비용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뭐.. 갑이요?"

이후, 그 친구는 계속해서 나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내용을 한참 설명해야 했다. 본인도 잘 모르는 내용이라 정말 내가 사기꾼인지 알아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총괄 부장이라는 개발자는 나라는 존재가 많이 눈에 가시였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퇴사해서 이직한 사람까지 찾아가서 내 험담을 했었다고. 무슨 크게 엮일 일이 있다고 자기 집안사람 하나 컨트롤도 못하는 돌싱 예정인 아줌마가 그렇게 거슬렸을까? (사람의 취향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충분히 거슬렸을 순 있다!) 경영진들은 이미 이 20대 초반의 개발자에게 심하게 가스라이팅 당한 상태였고, 또 가스라이팅을 당할 정도로 회사 업무를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서비스 종료도 머지않았다 판단한 나는 나를 둘러싼 황당한 의혹에 크게 한번 반박하곤 남편이라는 '관'보다 먼저 직장이라는 '관'을 내쳤다. 마지막으로 소식이 들렸을 때 회사는 내 퇴사와 함께 팀을 폐지하고, 총괄 부장이 마케팅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여윽시 글로벌 서비스 업체들에게 러브콜을 받을 만한 만능 개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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