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결혼생활이 힘들어서 우는데 달래주지도 않았다면서?"
이미 전남편의 독자적인 이혼선언으로 지난한 싸움을 알게 된 시어머니와 따로 가진 식사 자리에서 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왜 달래지? 그것보다도 뭘 달래줘야 하지? 그래그래 외박과 거짓말 눈감아주고 이혼할게. 그러니 울지 마, 뚝!?
나는 기쁨, 좌절, 슬픔을 제외한 그 이외의 눈물은 대체적으로 믿지 않는다. 앞의 감정들을 제외한 눈물들은 억울함의 눈물이다. 그동안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남자친구들이 아예 없었을까? 내가 바라본 내 남자친구들의 눈물은, 거진 본인들이 원하는 상황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나오는 눈물이었다. 난 그런 눈물은 절대 달래주지 않는다.
- "어머님, 다 큰 성인이 상황이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아이처럼 울부짖더라고요. 이혼하자고 떼쓰는 걸 제가 달래주어야 하나요?"
"한강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더라."
- "음, 제가 하루 먼저 뛰어내리면 될까요? 그런데 보통 자살하는 사람들은 그런 확실한 예고는 안 하지 않나요? 그건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이잖아요."
"애가 철이 많이 없어.. 네가 참아라. 너희 부모님께는 절대 알리지 말고."
- "네, 어머님. 그런데요, 제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순간부터 나는 슬픔 속에 억눌러왔던 분노를 폭발시키며 치밀해졌다. 관계 회복을 위한 부부 상담을 거부하는 남편을 내버려 둔 채 혼자서라도 꿋꿋하게 상담을 받아 만들 수 있었던 상담 증서로 가정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음을 증명했다. 그가 늦은 귀가와 외박을 저지를 때마다 혹시 몰라 그때그때 기록해 두었던 일기장, 시계가 찍힌 사진, 모바일 대화 내역이 폴더링 된 외장하드를 그대로 변호사에게 넘겼다. 습관 삼아 정리했던 결혼비용부터 혼인생활에 들어간 예산을 정리한 엑셀파일 하드카피를, 내가 전남편의 재산을 갈취했다고 뻑뻑 우기는 전남편 측 변호사의 변론이 끝나자마자 조용히 앞에 들이밀었을 때,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면서 통쾌해했다.
"엄마! 엄마가 내가 걔한테 맞았을 때 집안 물건들 깨지고 부서진 거 바로 치워서 증거로 못 썼잖아. 왜 사진도 안 찍었는데 바로 청소를 해?"
증거로 산출하지 못한 사진 한 장이 아쉬워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 "너, 너어어어무 무서워. 이혼할 걸 알고 결혼생활 내내 그런 자료들을 정리해 왔었던 거야?"
"...그냥 성격이야."
엑셀 이혼은 정말 내 스타일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상큼하게 잘 진행되어 만족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엑셀 이혼보다도 엑셀 결혼이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비용을 동등하게 부담하기 위해 그저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는, 내 몫을 다하는 멋진(?) 여자로 보이고 싶었던 욕심에 시작했던 것 같은데 결국은 제 몫을 하지 않은 상대를 향한 네 것, 내 것을 주장하는 용도로 변질된 것 같아 지금까지도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결혼이라는 것을 결국은 같은 목적의 인생을 함께 일구어 나갈 동료 간의 약속으로 바라보고 있고, '융합'이 아닌 '결합' (혹은 통합)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라? 맞다. 나는 애정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관계가 애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최종적으로는 우정과 의리로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 가치관은 점점 짙어져 간다. 스스로 깊이 인지하고 있는 이 사실 앞에서 앞으로 또 다른 새로운 연애가 쉽게 시작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