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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릉밈씨 Mar 07. 2024

그놈의 '너 T야?' 소리

 1999년 여름, 초등학교 음악실. 주번이었던 초딩 밈씨는 수업자료를 나누고 있었다.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앞에서 수업자료를 나누는 순간 들리는 한마디.

 "너는 친구한테 나눠 줄 때도 싸가지가 없냐?"


 크면서 내가 들은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제외 부정적인 평가는 보통 재수가 없다, 싸가지가 없다는 평가였다. 나는 수업자료를 나누는 손짓조차 싸가지가 없을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 평가는 MBTI 대유행 이후에 '너 T야?'라는 말로 다소 순하게 변했다. 정말 T인지 궁금해서 묻는 질문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그 질문은 너 왜 말하는 게 감정이 하나 없고 할 말만 따박따박하는 것이냐 또는 내 말에 공감 좀 해주면 안 되냐는 뜻이었다. 그 질문은 내게 있어 디베이트 플래그 ON 해보자는 뜻이다.


 "딱히 좋은 뉘앙스로 들리지는 않는데? 그러는 넌 F야?"

 - "어, 난 F인데?"

 "너랑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너 T냐 물으면서 빌드업하는 것 같은데 기분 나빠. 네 스타일이 맞다고 말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게 F야?"

- "얘 뼈 T네, 뼈 T야."


 맞다, T. 그래서 뭐?

나는 맞닥뜨린 상황에서 발생한 감정을 일단은 억누르려고 한다. 자칫 일시적일 수 있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싫고, 언제든 내 감정이 틀릴 수 있음을, 변덕스러울 수 있음을 염두에 둔다.

 도대체 결혼은 어떻게 한 것이냐?

내 스스로 변덕스럽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했다. 이 사람이라면 한 번은 다녀와도 되겠지 싶었다. 흔히 TV에서 연예인들이 본인들의 결혼썰을 풀 때 배우자에게서 광채가 났네, 귀에서 종소리가 들렸네 하는데 그렇진 않았다.


 그래서 다녀왔나 보다.

나 또한 내게 다짜고짜 너 T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내 배우자도 나처럼 감정이 변덕스럽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결혼한 거다 단정 짓고 있었다. 당연하게 나처럼 결혼이라는 것을 '융합'이 아닌 '결합'으로 인지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그가 우리의 결혼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가치관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여러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다시 새겨졌지만 내가 결혼에 임했던 마음가짐은 크게 희석되지 않았다. 한 번 다녀왔으면 되었지 같은 거 또 반복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다. 어떠한 족쇄가 내 마음의 문에 안전고리도 걸고 도어록 잠금 설정도 한 것 같다. 캬! 한 번의 결혼에 모든 걸 걸고 수절. 암, 결혼에 임했던 자세가 이렇게 인생을 몰빵할 정도는 되어야지. 아마 그는 이런 나의 멋진 면모(?)를 영원히 모르겠지.


 우연히 나와 MBTI가 같은 연예인이 관찰 예능에 나와 자기 자신에 대해 코멘터리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깊이 탄식했다.


 '어우 짜증 나, 재수 없어. 저 혼자 잘났어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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