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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릉밈씨 Mar 12. 2024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밈씨야, 엄마가 얼마 전에 꿈을 꾸었는데 아니 그 녀석이(전 남편) 집에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찾아와서는..."

 꿈에 나와서 찾아와? 순간 드디어 뒈졌나 했다.

 "... 자기가 지낼 곳이 없는데 머물러도 되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뭐 별 수 있어? 비어 있는 네 동생방 내주면서 들어오라고 했지."

- "....."


 우리 엄마는 가끔 이상한 꿈을 꾼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내가 너무 울어댔던 게 걱정이 되었는지 장례를 마친 얼마 후 엄마 꿈에 할아버지가 큰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어린아이들을 무릎 위에 앉혀 두고 다른 어른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며, 좋은 곳 가셨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건넨 적도 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 또는 신체의 알림 정도로만 생각하기에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엄마의 꿈은 신경이 쓰인다.

 - "근데 엄마, 아무리 꿈이라지만 어떻게 집안으로 들일 생각을 할 수 있어? 엄마는 걔가 혐오스럽지도 않아?"

 "불쌍하잖아.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걔가 뭘 알고 그랬겠어.."

 - "엄마 딸이 더 불쌍해. 뭘 모르고 그랬다면, 그 뭣도 모르고 저지른 짓에 내가 다쳤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건 또 무슨 소리람? 사람이 죄를 저지르는 것 아닌가? 그러면 '죄 = 사람'이 아닌가? 그게 분리가 되는 거였나?

 직장이 가까워 퇴근길에 가끔 함께 한잔 기울이는 친구에게 너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뜻이 뭔지 아냐고, 나는 도통 모르겠다며 물어보았다.

 "나는 너희 어머니 뜻 알 것 같아. 그건 말야....."

 미안. 열심히 설명해 줬는데, 사실 나 그때 너무 취해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나의 이전 글들과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함에도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듯이, 이제야 조금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뜻을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라고 일부러 자기 인생 걸어가며 혼인신고까지 하며 결혼하고, 바쁜 와중에 시간 쪼개 상간을 저지르고, 패소가 뻔히 보이는 소송을 1년 반이나 끌었겠는가. 그냥 어쩌다 보니 많이 덜 커서, 미련해서, 몰라서 그랬겠지. 그 덩치에, 그 나이에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니 애가 많이 불쌍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나도 다 끝난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인지 만약 그가 앞으로 잘 풀린다고 생각하면 '이제 정신 차리고 사는가 보다~' 할 것 같고, 폭망 한다고 하면 '그럼 그렇지' 하고 말 것 같다. 그 때문에 우는 날도 많았지만 그가 있어서 웃은 날도 많았다. 그 때문에 많이 아팠지만 그 덕분에 많이 즐겁기도 했다. 우리 둘 다 큰 경험을 했고 서로 고생 많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라는 것은 사과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1+1이 2라는 산수처럼 단순한 로직 개념으로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에 용서를 할 수가 없다. 그뿐이다.

 어디선가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업보빔이나 맞겠지.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30대가 되기 직전, 30대 중반을 좀 넘긴 남자친구를 잠깐 사귄 적이 있다. 그는 술담배를 즐기지 않는 건전한 성인으로, 단지 집에서 하루종일 누워서 판타지 소설만 보는 취미만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이 생소해 저 나이가 되도록 집에 누워서 아이들이 즐겨볼 법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며 내심 한심하게 여겼었다. 말이 안 통해 첫 싸움에 바로 헤어졌는데, 저리 성격이 답답스러우니 몇 년 동안 연애도 못하고 방구석에서 판타지 소설이나 읽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많이 늦었지만 정말 미안하다. 그 오빠와 완전히 똑같은 나이가 된 지금 나는 여러 일을 거치고 '(이)혼후순결 할 겁니다!'라고 읊조리고 있다. 방에서 뒹굴거리며 로맨스 판타지 소설만 탐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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