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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릉밈씨 Feb 24. 2024

연애 포트폴리오가 좀 안 좋아요

 몇몇 사람들을 정리하고 나서는 아무랄 것도 없는 잔잔한 일상이다. 일정 선 이상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도 없고, 일정 선 이상 넘어오려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표시하면 대충 알아듣고 그만둬 준다. 잠시나마 어여쁘게 봐줘서 고맙긴 하다만 그래, 이게 당연한 거지.


 나란 사람 도대체 이전엔 어떻게 연애를 하고 살았던 것일까?

기억이 난다, 기억이. 커서는 거의 없어졌지만 연애 초반, 남자친구라는 존재 자체는 좋아도 새로운 관계의 탄생에 부담감을 느껴 부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내게 친구들로부터 ‘넌 왜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행복하긴커녕 스트레스를 받는 거니?'라는 소리를 듣곤 했던 기억이.

 기억을 더 더듬다 보니 문득 이전 관계들에서 문화충격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들까지 생각이 난다. 당시 상대방들을 통해 그들의 입장에 대한 설명을 들어 머리로는 알았어도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런 경험들이.


(EP 1)

 사귀자마자 고향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상경한 남자친구를 개강 후 오랜만에 만난 학교 학관 앞에서 ‘안녕?’ 인사를 했다가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남자친구한테 안녕이 뭐냐, 안녕이...’라는 한소리를 들었다.

 "오빠, 내가 오빠한테 인사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

- "음.. 우리 계속 연락하고 지냈을 거 아냐, 그런데 갑자기 인사를 하니까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까?"

 "그럼 인사를 안 해?"


(EP 2)

 "뭘 봐?"

 2층에 위치한 음식점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갑자기 쳐다보는 남자친구를 향해 나는 말했다.

 "..애정을 담아 쳐다봤는데 그게 뭘 보냐는 말을 들을 행동이야?"

 그 행동을 왜 계단 오르다 말고 하는 건데.


(EP 3)

 한파가 몰아치던 날, 남자친구를 만나 번화가로 이동하려는데 너무 추워 택시를 타고 가자는 내게 남자친구는 가까운 거리인데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다.

 "그럼 나는 택시를 타고, 오빠는 버스를 타고 잠시 뒤에 다시 만나면 되지 않을까?"

- "(화를 내며)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왜 안되지? 추운데 길거리에서 택시 타네, 버스 타네 옥신각신하며 시간 날리느니 나름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 같은데?


(EP 4)

 남자친구랑 공원을 걷고 있는데 목줄이 채워지지 않은 하얀 포메라니안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지인들의 친하게 지내고 있는 강아지들 빼고는 함부로 강아지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나는 공원 벤치로 뛰어올랐다. 쉬지 않고 짖으며 물러서지 않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공포를 느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걸 지켜보기만 하던 포메라니안의 주인이었던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아이고, 안 물어요. 이렇게 귀여운데."

 남자친구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저 작은 강아지 앞에서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날 일이야? 동물 안 좋아하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던데.."


(EP 5)

  처음 전남편에게 혼자 지내고 싶다,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주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침착하게 대응하기로, 나 또한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기로 했다.

 "나도 사실은 외박과 거짓말이 늘어가는 너한테 정이 많이 떨어진 상태야. 그런데 이거 연애 아니고 결혼이잖아. 가족으로서의 너란 존재와 노력은 해 보고 싶은데?"

 자기 뜻이 잘 관철되지 않자 그는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순간 어린애도 아니고 내 앞에서 떼를 쓰는 이 남자가 다 큰 성인 맞나 싶어 당황스러움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내게 소리쳤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우는데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고 달래주지도 않아? 너는 사이코 패스, 소시오 패스야!!"


 몇 번 안 되는 관계를 거치며 나는 사귀고 있던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감정적인 문제를 지적받아왔고, 나름 맞춰보고자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전혀 변하지 못했으며, 최종적으로 의사 자격증도 없는 전남편에게 사이코 패스, 소시오 패스 판정을 받았다.


 연애 포트폴리오는 쌓였지만 우연히 쌓였을 뿐 잘 관리하지 못하여 상대방에게 있어서 딱히 좋은 여자친구, 아내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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