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job설

일의 감각은 감각적이지 않다

조수용의 "일의 감각" 을 읽고

by Mr Kim

하드커버. 옛날말로 양장본이라고 하는 책들은 내게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지만은 않는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 시대에 내가 경험한 하드커버는 대체로 얇은 것들이었다. 얇으니까, 읽을 내용은 별로 없고, 그럼 가격도 낮춰 잡아야 하니까, 그런이유로 적당한 두께와 더 적당한 가격을 작당하기 위한 수단이 두꺼운 표지인것 같았다.

이 책은 조금 애매했다. 263페이지니까 그렇게 얇은 책은 아닌데, 쓱 펼쳐보니 역시 글자가 컸다. 그리고 하드커버임을 감안해도 한손에 착 감기고 가벼웠다. 그럼 그렇지 내용이 별로 없나보다.


그런데 표지가 조금 달랐다. 사글했다. 사각사각하지 않다. 저항감 있으면서도 미끄러진다. 무언가 촌스러운것 같기도 하고 세련된 것 같기도 한 오렌지 색하며, 오래된 책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표지의 정직한 명조체의 글씨체. 나는 디자인 감각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라서 이 디자인을 평할만한 위치가 못된다. 그렇지만 이런 것 저런것을 차치하더라도, 그 까슬하다고 하기에는 매끄럽고 매끄럽다고 하기에는 까끌한 표지의 느낌만큼은 감각적이었다.


글을 읽다보니 왠지 작가가 표지까지 직접 디자인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이 책의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책의 저자가 내가 맨날 켜는 네이버 녹색창의 창시자이며, 광고없이 10년째 나오는, 심지어 해외에 수출한다는 매거진b의 창간자라는 사실, 즉 디자이너에서 경영자가 된 조수용이라는 사실을 찬찬히 음미해보면 충분히 그럴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하고싶은 말을 줄여보자면, 일의 감각은 감각이 아니라 경험과 고민의 축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일을 잘 해냈을때, 남들이 보기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처럼 보이는 어떤 해결책이 조직의 문제를 박살내고 돌파구를 마련했을때, '감각이 좋다' 또는 '아이디어가 좋다'는 말 한마디로 그 아이디어가 수면에 떠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가라앉아버린다는 사실을, 저자는 배격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일의 감각은 감각적이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태도에 가깝다.


일을 잘하려면, 오너의 고민을 대신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여러번에 걸쳐서 오너라는 말을 강조하며, 오너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대하다보면 오너만이 낼수 있는 깊이있는 해결책과 방향성이 나온다고 말한다. 나는 이 표현이 감각적이라고 생각한다. 수처작주, 어디를 가든 그 자리의 주인이 되어라는 옛 지혜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처럼의 진득함과 절박함으로 일을 대할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고, 그 때 남들은 나의 인사이트를 '감각적'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의 감각은 감각적이지 않다. 일의 감각은 감각이 아니라 내공이다. 그렇다면 이책의 제목은 '일의 내공' 이 되어야 정확하다. 그렇지만 일의 내공은 너무 구수하다. '감각적' 이지 않은 것이다.


저자가 또하나 강조하는 것은 빼기다. 저자는 여러차례 브랜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브랜딩은 이것저것 좋은 점을 모아모아서 맛있는 짬뽕 한 그릇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본질을 살리고 나머지는 뺄수 있는 것이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하면서 예시로 든것이 어느새 사라져버린 네이버 녹색창위의 날개였다.(날개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요즈음 책을 많이 읽고 싶어졌다. 원래도 안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종이책이 읽고 싶어졌고,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싶어졌다. 나의 잠재의식이 작동했는지 오늘 카페에 올때 노트북 어댑터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 잘 빼버렸다.

덕분에 오늘 나의 일들은 강제로 미뤄졌고, 그 빈자리는 이 글이 채웠다. 감각적인 나의 건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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