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job설

길위의 축복

정세희의 길위의 뇌를 읽고

by Mr Kim

팀버튼의 화성침공.

영화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투명한 유리헬멧안에 뽀글뽀글한 라면사리가 뒤엉킨것 같은 뇌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외계인의 얼굴만은 정확히 기억이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뇌가 기억이난다.


길위의 뇌. 나에게 '길위'와 '뇌'의 조합은 팀버튼의 화성침공 같은 느낌이었다.

길은, 서정적이고, 설레이기도 하고, 지난하기도 하며, 영원하기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한, 어떤 것이다. 길 위에는 무엇이든 지나갈 수 있으므로 찰나적이지만, 길 자체는 지나가지 않으므로 영원하기도 하다. 그런 감성적인 길위에다가


'머리'가 아닌 '뇌'를 올려놓는다고?


저자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재활의학과 교수로 달리기와 뇌를 오랜시간 연구해온 사람이며, 마라톤도 하는 러너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리고 이 책을 조금만 읽다보면, 길위에 뇌를 올려놓은 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된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에게 달리기는 종교이다.

달리기만 하면 만사가 형통이고, 만병이 통치된다. 러너의 땀은 더러운 번뇌를 씻길 청수이고, 러너의 발은 지겹게도 솟아오르는 스트레스를 밟아버릴 금강저고, 러너의 눈은 지혜를 꿰뚫을 반야지이며, 타닥타닥 발걸음은 패배감을 물리칠 승리의 고동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은 더운 뇌를 식혀줄 감로수이고, 머리를 두들기는 여름비는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천지의 박수이다.


나도 새벽달리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늘 달리기교를 전파하고 싶었는데, 저자 정세희 이분은 아예 작정하고 달리기교의 경전을 널리 이르고자 하신 것 같다. 단, 본인이 잘 정통하신 의학과 과학이라는 언어로.


-인간의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자료로서 심폐능력은 매우 탁월하고 강력한 지표이다. 달리기를 하면 심폐능력이 늘어나므로 강력한 수명연장을 기대할 수 있다.

-달리기는 말그대로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의 튼실한 대퇴부와 애플힙은 모두 균형잡고 잘 달리기위한 기관이다. 인간은 짧고 강력한 힘을 내는 속근보다 오랫동안 작동하는 지근이 훨씬 발달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잘 달리기 위해 인간이 진화해온 과정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여러가지 능력이 보잘것없는 인간은 먹잇감이 지쳐 쓰러질때 까지 쫒아가는 전략을 택했고, 그 결과가 장거리 달리기의 명수가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달리기위한 몸을 갖고 걷기조차 싫어한다. 이는 아가미 달린 생선이 물 밖에서 숨을 헐떡이는 것과 같다.

-운동의 원리는 결국 과부하의 원리이다. 근육을 키우려면 근육에 부하를, 심폐능력을 키우려면 심폐에 부하를 줘야하는데, 달리기가 이 역할을 한다. 걷기는 심폐에 부하를 주지 못하므로 건강 증진능력이 부족하다(걷기조차 힘든 상태의 사람이 걷기를 운동을 하는것이 아니라면). 결국 달려야 한다.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 나타나서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의 근거를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책을 읽으며 은혜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와 같이 달리는 것 같았다. 이 은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난 달리기를 한다고 뱃살이 들어가지 않았다.

달리기를 한다고 직장에서 승진을 하지도 않았으며

달리기를 한다고 와이프에게 더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달리기를 하면, 침대에서 일어날때 그 찝찝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그 기분,

이렇게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하나 하는 그 패배자스러운 기분,

그 기분을 박살낼 수 있다.


사람들아, 축복이 바로 대문 앞 길위에 당도해 있으니 받으러 나섭시다.

같이 달려요.

길위의 축복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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