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job설

합얼빈

김훈의 하얼빈을 읽고

by Mr Kim

哈尔滨.

오래전 언젠가 이 단어를 본적이 있다. 하얼빈의 한자표기.

이상했다.

베이징은 북경, 도쿄는 동경. 이 단어들을 한자로 볼때는 이상하지 않았는데, 하얼빈은 이상했다. '하'에 해당하는 "합哈" 밖에는 읽을수 없었지만.

왜 그럴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어떤 도시가 한자로 치환될수 있다는 것이. 그냥 한국인에게 하얼빈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쏜 곳이고, 이 사건을 제외하고 다른 경로로 이 도시와 처음 만남을 가질만한 통로가 드물지 않을까. 안중근. 이토. 하얼빈은 한줄 대오를 이루어 동시에 다가오는 것이고 중국적 색채가 끼어들기 전에 이토가 내린 철도와 그를 위시하던 일본군과 안중근이 품에서 꺼냈을 육혈포가 개념의 자리를 차지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왜 김훈은 하얼빈을 택했을까. 나와 같은 개념의 대오가 그의 머릿속에도 있었을까. 왜 안중근이나 그의 세례명인 도마나 그가 외친 코레아가 아닌 하얼빈일까.

인간 안중근의 고뇌보다 권총이 발사되고 이토가 쓰러진 그 현장에서 출발하고 싶었을까.


책을 읽으며 어느정도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훈의 문장은 건조하다. 그리고 물리적이다. 지금 이 글을 뱉어내고 있는 나의 블랙베리 키보드처럼, 그의 글은 그가 쓰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말대로 연필을 따라 종이와의 최대정지마찰력을 이기며 써지는 것이다. 그의 글에는 접속사가 하나도 없다. 공이가 총알을 때려 화약이 터지고 탄두가 총열속에 밀어질때, 총알은 제 의지와 관계없이 강선을 따라 휘돌아 나갈것이다. 안중근의 총알은 하릴없이 돌고 돌아 공기를 가를것이고, 이토의 피부를 뚫고 몸에 박혔을 것이다.

김훈의 문장은 영어에 가깝다. 끝의 경계가 분명한 명사, 손에 잡히는 명사인 물건들이 주어자리를 차지하고 수동태를 이루며 끌려나온다. 우리말은 원래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사람이 주어가 되어 동사와 형용사와 부사를 부려가며 몽글몽글하고 출렁출렁하는 리듬을 타며 말랑하게, 인간이 펼쳐가는 교향악과 비슷하다. 김훈의 문장은, 우리말로 쓴 물리학 교과서 같다.


안중근의 총은 안중근이 총알을 쏘아보내는 것이 맞겠지만 김훈이 구성한 세계에서는 쏘아지는 것이다. 물리적이고 건조하다. 그렇지만 그 총알 위에는 안중근의 의지가 올라타고 있다. 안중근이라는 사람보다는 안중근의 '의지'라는 추상 명사가 올라타는것이, 김훈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럽다.


"하얼빈" 에는 안중근이 왜 이토를 쏘아야했는가, 어떻게 그 길로 걸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안중근의 자라온 자취나 신앙인으로서의 고뇌는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하얼빈의 이토를 향해가는 발걸음이 무심하게 설명되고, 그 발걸음이 닿아지는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이 이토를 중심으로 하여, 순종황제를 중심으로 하여, 이곳저곳에서 스러져간 독립군들을 조연으로 하여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하얼빈을 향해가는 그 동작들과 그 동작의 결과, 그리고 그 동작의 여파들이 서술된다.


안중근의 체포이후 안중근이 보여주었던 의연함, 죽음을 초월한 듯한 진중함, 일본인 간수들도 존경을 마지않았던 그의 결단과 의지는 전혀 하얼빈에서 흐르지 않는다. 안중근의 죽음도 명사와 동사가 주를 이룬다. 독자의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을법한 안중근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하얼빈에서는 교수형 집행후 10분후에 사망하였다는 한 문장으로 드러날 뿐이다.그 건조함은 동토의 칼바람처럼 파고드는 긴장감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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