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위대한 위인들
그는 이름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어서도 흔한 아명조차 남지 않고, 남편의 성씨를 따라 불린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기구한 삶을 살았음에도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분이었기에, 작가 이광수는 비석처럼 이 글을 세워 그녀의 삶을 남긴 것이 아닐까요. 피를 가진 인간이 이름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피 끓는 한을 품고도 끝내 아름다운 임종을 맞이한 그녀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답게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작가는 서두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그는 무엇이라고 아명도 있었으나 그것은 친정 친족이나 아는 이름이요, 또 호적상 이름도 있으나 그것은 아마 자기나 마음에 기억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그 자녀들도 들어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삼남 이녀를 남기고 늙은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임종이 심히 아름다왔다 하여서 칭송이 있기 때문에 이 전기를 쓰게 된 것이다.”
첫 번째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죽음 이후의 평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작가는 “세상은 그의 이름도 모르는 존재였으나……그의 임종이 심히 아름다웠다”라고 적었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람이라 인정해 주는 삶을 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과연 그러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물음이 제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두 번째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김 씨 부인은 한 상인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죄로 매를 맞으며 자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리하고 부지런하여 집안일을 살뜰히 도맡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혼처도 있었으나 부모는 무당의 말을 믿고 모두 물리쳤습니다. 결국 열여덟 나이에 마흔이 넘은 홀아비의 후실이 되어야 했습니다. 전실 소생 네 자식까지 떠안아야 했지요. 오늘날이었다면 야반도주라도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김 씨 부인은 혼자 울었을 뿐이요, 한 마디 항의도 한 일이 없었다.”
그녀는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어머니로서의 책임입니다.
전실 자녀들에게조차 어미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끝내 그들을 정성으로 길렀습니다. 장례 자리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씨 부인이 길러낸 전실 아들과 며느리와 딸들과 손녀들이 모두 거상을 입고 울었다.”
작가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김 씨 부인은 전실 소생 네 아이를 삼십 년 동안 길러 성취를 시켰고, 손주 다섯도 업어 길렀으며, 제 자식도 넷이나 낳아 기르셨다.”
피붙이가 아니어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 번째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삶입니다.
김 씨 부인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끝까지 내게 끔찍이 해주셨으니 나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요. 아이들이 성취하는 것을 못 보고 죽는 것이 유한이지마는 당신 앞에서 죽어서 당신 손에 묻히는 것이 오죽 좋은 일이요?”
그리고 사흘 뒤, 비 오는 밤에 남편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습니다.
이 대목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장례 자리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실자식 사남매를 길러내는 동안이 수도생활이었어.”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길에 이보다 더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아마 지금은 김씨 부인의 무덤도 비석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광수는 세상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으로서 그의 이름 앞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선한 삶은 이렇게 글로 불러내어야 잊히지 않겠지요. 이름은 사라졌으나, 그분이 남긴 삶의 결은 오늘 우리의 마음에 또 하나의 비석으로 서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