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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Jun 20. 2018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어쩌면 투병일기 프리퀄 하나 더


여름 생일인 소띠. 농번기 소처럼 요령 없이 일이 들어오는대로 넙죽넙죽 일해놓고, 연봉협상은 제대로 실패했던 나는(70만원만 더 올려주면 연봉 앞자리가 바뀌는 상황이었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내가 발목을 잡혀... 본부장님 보고계십니까) 칸 광고제도 아닌 겨우 부산국제광고제지만 그래도 회사가 내게 6년만에 처음으로 베푸는 포상을 만끽하며, 친한 동기와 함께 신나게 놀고 먹고 꿀잠 자는 부산에서의 2박3일을 보낸 뒤 서울로 향하는 KTX를 탔다.



혐생으로의 복귀는 왠지 그 시작이 좋지 않았다. 일단 KTX 타기 직전부터, 서울역으로 마중 나올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는 남편의 무기력하고 심드렁한 하품 소리에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고, 그와는 반대로 자기 남편이 서울역으로 차 끌고 마중 나오기로 했다는 동기의 말에 부러워 속이 쓰렸고,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열차 탑승 직전 허겁지겁 먹은 부산오뎅 탓인지 열차에 올라탄지 5분이 지나자 체한 것처럼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서울역에 내릴 때까지는 참았는데, 서울역에 내리니 똑바로 서지도 못할 만큼 너무 몸이 안좋아서 일단 동기가 권하는 대로 동기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시댁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상태는 더욱 심해졌는데, 괜히 나 때문에 길을 돌아 가는 동기 부부에게 미안해 아픈 티도 못 내고 끙끙 앓으며 일단 목적지까지 참고, 차에서 내린 후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완벽하게 동기 부부에게 손까지 흔들어 준 후 집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체한 것처럼 손발이 너무 차가워서, 어머님이나 나나 부산오뎅이 문제일 거라며 손발을 바늘로 따고 별 짓을 다 했으나 한시간이 넘어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결국 저녁도 못 먹고 온 가족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세상에서 이렇게 심한 두통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머리가 속에서부터 깨질 것 같아서, 차라리 벽에다 머리를 박고 깨뜨리고 싶었다. 머리는 또 얼마나 뜨거운지, 열을 재보니 체온이 42도가 넘었다. 뭣? 그런 체온은 삐뽀삐뽀119에서나 본 수치다. 사람이 정말 40도가 넘게 열이 날 수 있는거야? 아니, 일단 40도가 넘으니 그 동안 열이 났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열을 견디지 못한 몸이 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뭔가 이상하다. 체한 게 아니다.




약 먹고 푹 자면 나을 거라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열에 취해 뭘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단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남편을 흔들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남편은 급하게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맡기곤 나를 출고된 지 3일 된, 따끈따끈한 새 차에 실었다. 고대했던 새 차를 타고 처음 가는 곳이 하필 병원 응급실이라니.










첫 번째 응급실 방문했을 때는, 진료를 보더니 들어가서 쉬면 괜찮을 거라 했다. 하지만 열이 전혀 떨어지지 않고 구토가 계속되자, 우리는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그제야 응급의는 목이 뻐근한지를 묻더니 뇌수막염의 가능성이 있으니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검사! 그래, 검사.



자 뇌수막염 검사는 어떻게 하는지 지금부터 알려주겠다. 뇌수막염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척수액을 뽑아 검사를 해야 하는데, 세균성인 경우 치사율이 상당하고 위험하므로 항생제를 바로 투여해야 하며, 바이러스성인 경우에는 자연 치유되지만 일단 척수액을 뽑았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유발되어 척수액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한다. 얼마동안? 대략 일주일 정도는.



자 척수액은 어떻게 뽑느냐, 말 그대로 척추, 등에 있는 척추에 큰 바늘을 꽂아 쭉쭉 뽑아낸다. 세상에. 글을 쓰고 있자니 그 끔찍한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군. 주사바늘이 들어가기 쉽도록 모로 누워 몸을 새우처럼 최대한 둥글린 후 거대한 바늘이 당신의 뼛 속 깊이 훅 찔러들어오는 그 느낌을 버티셔야 합니다요.



불행 중 다행으로 세균성 뇌수막염은 아니고, 바이러스성이라 했으나 (의사 말로는 '일명 머리로 오는 감기') 일단 척수액을 상당히 뽑아놓았으니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져 일주일 내내 누워 수액을 맞았다. 회사에서는 '놀러 보내 놓았더니 아프다'며, '역시 일만 하는 애는 다른 걸 시키면 안된다'는 (섬뜩한) 농담이 오갔다는 소식을 복귀해서야 들었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네가 예전에 뇌가 아파서 이번에도 뇌수막염에 걸린거야? 정말 너는 뇌를 조심해야겠구나' 라며 내게 육성으로 말했는데, 왠지 모르게 너무나 기분이 나빠서 속으로 '아니 웬 개소리야' 라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왠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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