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 Pil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sy Aug 09. 2019

왜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포기인가?

자기포기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비아냥을 넘어 일상어가 되었다. 어쩌다 개천에서 용이 생겨나도 날개가 없어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말도 한다. 하는 말이지만 원래 동양의 용은 날개가 없다. 신통력으로 나는 것이지 퍼덕거려서 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재능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훌륭하다는 말이 헷갈린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가장 쓸모 있는 재능은 무엇일까? 뛰어난 운동능력, 지능지수? 다 아니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이 꼽는 2위 재능부터 말하자면 외모다.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는 말이 있듯이, 잘생기고 예쁘면 무조건 유리한 게 요즘 우리 사회다. 그러나 외모를 압도할 만한 재능이 있다. 그건 부모의 부(富), 아버지나 어머니가 부자가 아니라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도 괜찮다. 어떤 경우에는 더 낫다. 


조부모를 합쳐서 일단 부모의 부(富)라고 부르자. 이 부자라는 재능은 실로 대단해서 어지간한 다른 재능을 모두 능가할뿐더러 어느 수준까지는 비슷하게 맞춰주기도 한다. 성형수술을 통해 예뻐질 수 있고, 과외선생을 붙이면 성적향상도 가능하다. 뭐 완전 가망 없는 머리라면 어려울 수도 있다. 얼굴은 안 그런가? 절대 안 되는 얼굴이 있으니, 이 자리에서 그런 극단적인 얘기는 하지 말자. 어디까지나 트렌드를 얘기하는 중이니까.


부자라는 재능은 약간의 패널티가 있다. 효도를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정한 효심은 아니라도 생일식사에는 꼭 참석해야 하며 들 때 날 때 인사도 해야 한다. 이 효도라는 게 참 웃기는 것이어서 집안이 가난하거나 부자인 경우 효도가 살아있고, 어중간한 계층에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이유를 따져보면 참으로 그럴 듯하다. 부자인 집에서는 효도를 하지 않으면 유산을 챙길 수 없으니 억지로라도 효도하는 척 하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가난하면 가족끼리 못 볼 꼴 많이 보고 살아서 그런지 단결, 충성 뭐 이런 메카니즘이 작동하며 효심 게이지가 올라간다. TV를 보라.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말하는 집은 십중팔구 가난한 집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샜다. 이야기를 똑바로만 진행하기에는 세상이 비뚤어져있어서 그런 탓도 있으니 넘어가기 바란다. 우리는 현재 부자라는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왜 포기해야 하는지 증명하려는 중이니까. 


부자라는 재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한 노력으로 뭔가 이루기에는 큰 한계가 있다. 간혹 노력으로 자수성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묻겠다. 노력보다 훨씬 큰 운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혹시 남몰래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닌지? 탈세는? 탈법은? 


운이라는 게 크게 보면 트렌드에 맞아 떨어진 것도 운이라고 볼 수 있다. 트렌드라는 것은 말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보니 도저히 맞추거나 따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간혹 예측하고 트렌드를 기다리기도 하는데 그게 맞아떨어지는 것도 실력이라기 보다는 운에 가깝다. 


똑같은 예술을 해도 트렌드에 맞으면 돈이 되고 트렌드에 맞지 않으면 묻힌다. 빈센트 반 고흐를 보자. 그의 그림 가격은 수백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고흐가 살아 생전에 제값 받고 팔아버린 단 한 장의 그림, “아를의 붉은 포도밭”의 가격은 당시 돈으로 400프랑,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잘 쳐도 100만원쯤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고 있자면 고흐의 작은 소망이 여실히 드러난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1000프랑 정도에 팔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죽을 때까지 900점 가량의 회화를 그리면서, 죽는 순간까지도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고 후원해줬던 동생 테오는 빈센트가 죽고 1년 뒤에 따라 세상을 떴고, 약값 대신 편지값 대신 숙박비 대신 이래 저래 그림을 한 점씩 챙긴 주변인들의 후손이나, 화랑주인, 그림 도둑, 2차 대전 전범들이 엄청난 그림값을 챙겼다.


고흐는 너무 앞서 갔다. 그가 죽고 30년이 지나서야 그의 그림이 조금씩 유명해졌고, 100년이 지나서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고흐가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지만 고흐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에는 그에게 그림을 포기하라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어이, 니 그림은 너무 노란색이야.”

또는,

“이게 별이야 소용돌이야. 이딴 건 나도 그리겠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때 고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일찍 죽었다. 만 37년 4개월 만에.


다 포기하고 죽자는 얘기 아니니까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자. 내가 하려는 말은 재능이나 운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세상에 살면서 노력이나 하자고 죽을 때까지 노력하지 말자는 말이다.


삼성의 한 임원에게 성공 비결을 물으면서, “운칠기삼, 아니겠습니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다. 

“운 11, 기 -1입니다.”

괜히 재주부리면 한방에 가는 수 있다는 뼈 있는 말이었다. 


뭐든지 숫자로 환산하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경제학자 중 친한 사람이 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성공하는데 ‘재능’, 특히 부모의 재산과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인생에서 얼마나 될까요? 혹시 시간이 나시면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도 좀 알려주세요.”


어차피 경제학자가 따지는 산식은 때려잡기나 다름없으니 필자가 대신 답하자면 아무리 쳐줘도 99대1이다. 운과 재능 앞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확률이 버티고 있으니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무책임한 말을. 


후학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필자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 게 아직 있다면.


p.s) 상단 일러스트 출처: 에곤 쉴레의 드로잉 작품입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다면 삭제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생(生)은 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