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어."
"모르다니. 이혼하는 사람이 이혼하는 이유를 모른다고? 그게 말이 돼?"
"처음에는 당연히 이혼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
"또 답답한 소리한다. 말하기 싫어서 그래? 말하기 싫으면 하지마. (바텐더에게) 여기 초콜렛 좀 더 주세요. 갑자기 단게 확 당기네."
시영이 입을 꾹 다물자 영호는 서비스로 나온 초콜릿을 한 움큼 쥐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스키병에서 술을 따라 물처럼 꿀꺽꿀꺽 마셨다.
"아, 써. 초콜릿 먹고 마시면 좀 달까 했더니. 그냥 달달한 칵테일이나 마실까? 시켜도 되지? (바텐더에게) 여기요!"
바텐더가 오기 전에 시영이 말했다.
"너도 대충 알잖아."
"내가 뭘?"
"내가 전에 말했잖아."
"전에 뭘 말했는데? 우리가 이야기한 게 한 두개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결혼한 이유."
"그야 그 여자 집안에서는 유통 플랫폼이 필요하고, 너네 집은 투자가 필요해서 결혼했다는 거? 그거야 신문에도 난 거 잖아."
"그거 말고. 약속 있잖아."
"무슨 약속? 너 나한테 말고 다른 사람한테 말한 거 아니야?"
"내가 이런 거 말할 사람이 누가 있어?"
"없지. 그럼 꿈꿨나보지. 여튼 나는 전혀 몰라. 아니면 내가 취했을 때 말했거나."
"결혼 조건이 있었는데."
"결혼 조건? 그런거 진짜 처음 들어. 그렇게 중요한 걸 내가 까먹었으리가 없잖아."
"결혼하면 학교 그만 다니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 배우기로 했거든."
"니가? 왜?"
"그쪽 집에서 내가 경영에 참여해야 결혼 시키겠다고 해서."
"햐, 정략결혼이라고 하지만 별거 다 한다. 설마 계약서도 있어?"
"결혼 계약서에 적지는 않았어."
"진짜 결혼 계약서를 썼다고? 난 드라마에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러기로 약속했어"
"회사 들어가기로?"
"응."
"헐. 진짜 몰랐다. 그런데 너 회사 가는 거 끔찍하게 생각했잖아. 경영 같은 거 싫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약속을 했어?"
"조교수 임용이 안 되니까. 난 뭘 해도 안 되는 건가 싶어서."
"뭘 해도 안 되는데 기업 경영은 되고?"
"그건 망쳐도 상관없으니까."
"망치다니 미쳤어? 너네 집이 재벌은 아니라도 100대 기업에는 들어가는데 그게 얼마짜리인데 망쳐?"
"상관없어."
"이게 이게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야, 엄밀히 그 회사가 다 너네 집 꺼냐? 주주들이 있고 직원이 있고, 그 회사 잘못되면 같이 망할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걸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거나 마셔!"
영호가 시영의 잔에 위스키를 절반 쯤 채워 앞으로 밀었다.
"왜?"
"벌주야. 그리고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마. 진짜 벌 받는다."
시영은 잠깐 생각하다가 주는 대로 위스키를 다 마셨다. 그러나 초콜렛은 먹지 않았다.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입안의 쓴 맛을 느꼈다.
"넌 말이야.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제일 나쁜 게.."
"??"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그래."
"내가 뭘 가졌는데?"
"진짜 몰라서 물어?"
"우리 집안? 그건 내거 아닌데."
"니 것도 있잖아. 주식도 있고. 네 명의의 건물도 있고. 니 건물에 내 책방도 있는데 잊은 건 아니지?"
"알고 있어."
"말 나온 김에 월세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요즘 책이 너무 안 팔려서 그런데 연말까지만 미뤄 줄 수 있어? 사람들이 북카페도 아닌데 책은 사지도 않으면서 신간 뒤적거리다가 서비스 쿠키와 음료만 먹고 그냥 나간다. 그러면 안 쪽팔리나? 인간적으로 안 살 거면 쿠키는 안 먹어야지. 그리고 예의가 없어. 인터넷으로 살거면 나가서 하든가, 뻔히 보는데서."
시영이 영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설마 월세 미뤄달라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겠지? 그럴 리 없다. 자기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자식이 그깟 월세 몇푼이나 한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보는 거지? 내가 실수한 게 있나?
"네 말이 맞아. 집에 돈이 있으니까 공부도 한 거지. 잘 안됐지만. 또 그러니까 그런 약속을 한 거고."
영호는 안심했다.
"알면 됐어. 회사 들어가기로 약속했고 결혼했고 그런데 뭐가 문제야?"
"출근을 못 했어."
#7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