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는 무엇을 해체했나?

by 시sy

"물고기를 나무 오르는 능력으로 판단하면 그 물고기는 평생 자기가 바보인 줄 알고 산다."


초중학 시절 아인슈타인은 학교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언어 습득이 늦었고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중학교부터는 아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학습하는 성향을 드러내다 보니, 일부 선생님들에게 '문제아' 또는 '머린 나쁜 아이'로 평가받았다.

아인슈타인은 이른바 '나무를 못 오르는 바보 물고기'였던 것이다.


이 물고기 이야기는 아인슈타인이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출처는 알기 어렵다. 어쩌거나 아인슈타인과 잘 어울리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제 물고기 이야기를 해체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해 보자. 해체주의에서는 단어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맥락에 의존한다. 즉, 물고기는 물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지 나무가 많은 숲 속에서는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고를 좀 더 확장해 보자. 모든 사람은 각각에 맞는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 여기서 문제, 당신은 어떤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까?


해체주의에 '해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확실히 '무엇'을 해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이 무엇일까? 해체주의는 무엇을 해체하려 했나?

단적으로 말하면 해체의 대상은, 형이상학적 전통과 그에 기반한 의미의 고정성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형이상학적 전통은 무엇인가? 그게 뭐 나쁜가?


서양 철학을 잘 뜯어보면 종종 대립적인 개념을 설정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말과 글, 본질과 현상,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 중심과 주변.

이들은 단순히 대립적 개념일 뿐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 보다 낫거나 영향을 미치는 위계적 권위를 부여받았다. 이를테면 현상보다는 본질이 앞서고, 감성보다는 이성, 여성보다는 남성, 글보다는 말이 원본이라는 식이다.

이런 구분은 플라톤부터 이어 온 서양 철학의 유산이라 할 수도 있다. 해체주의는 바로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과 권력관계를 해체하려 했다.

쉽게 말해, 뭐가 이성이고 감성이냐? 뭐가 본질이고 현상이냐?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것을 구분했기 때문에 인식과 추론의 오류가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처음에는 서양철학의 이분법적 개념 설정에 의문을 던졌던 해체주의는 점차 해체의 대상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언어와 언어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이다.


'언어는 항상 차연(différance)을 통해 의미를 끝없이 연기하고 변형시키며 궁극적인 의미는 도달할 수 없다.'


언어의 의미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철학에서 언어가 가지는 지위는 확고하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해석한다. 그런데 언어의 의미가 계속 변하고 고정되지 않는다면 전통 철학이 정립한 '보편적 이성'이나 '객관적 진리'의 토대가 부실해진다.


사실 언어의 의미는 시대가 바뀌면 점차 변형되는 것은 맞다. 예전에는 섹시하다는 표현에 비하의 의도가 담겼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같은 단어나 문장이라 할지라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은 당연하다.


해체주의 최고 강점은 뭐든지 해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어를 해체한 마당에 이론이나 개념, 규칙이나 제도, 관습까지 못 할 게 없다. 하지만 해체하고 난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의미는 맥락에 따라 변형된다고 하지만 그런 식이면 맥락 역시 변하지 않을까?

텍스트는 독자의 해석에 따라 끝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의 해석이 다르면 그것이 해석일까?

무엇보다 해체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도 고정되지 않은 것인데, 해체주의가 하려 했던 모든 작업의 의미도 불안정하지 않은가? 어떤 것도 정립할 수 없다면 해체주의 역시 정립할 수 없다. 바로 자기모순이다.


때문에 해체주의는 이론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해체주의는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탐구의 과정이라 스스로 칭했다.


"나는 나를 너무 분해했다."


자크 데리다는 이 같은 말로 자신이 처한 모순적 상황을 토로했다. 철학을 탐구하는 주체인 자아조차 해체해 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은 너무 헷갈려서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겠다고 하는 말조차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나는 어떤 맥락에서 해석되고 판단받아야 하나?

해체주의에 따르면 그 맥락조차 특정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속한 맥락이 부당하게 느껴진다면 부당한 것이 맞다. 나는 육지 올라 나무에 오르기를 강요당하는 물고기인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바보라고 좌절하지 말자. 나를 탓할 것 없다.


당장은 바다로 돌아갈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는 중이다.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꿈을 꾸자.

나의 바다는 푸른 물결이 흩날리고 자유롭다.


나의 바다여. 내 꿈은 자유이니 지금은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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