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기 2 : 날개와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텅 빈 모니터만 보고 있다.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독한 무기력에 빠졌으나 내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하얗다. 백색 모니터 화면이 내 머릿속과 동화된다. 간신히 손가락만 까딱거려 키보드를 두드리고 뭔지 모를 텍스트가 조금씩 길어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언제부터인가 난 그렇게 기다린다. 뭔지 모를 어떤 것을.. 그 어떤 것은 사람일까? 행운일까? 돈일까?
"그는 내일 올 거야... 적어도 그렇게 말했어."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말했다. 블라디미르가 기다린 것은 사람이었나? 그러나 고도는 매일 내일 온다고 하면서 끝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기다리자."
블라디미르는 다짐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기다린다. 혹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까? 죽음은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인데. 느리지만 확실하게 당신을 향해서.
누군가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시간을 허비해? 나는 악을 쓰며 항변한다.
. 나는 시간을 버리고 있어.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말이야.
. 왜?
. 왜냐니? 필요 없으니까.
'날개'에서 이상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그래서 그리 빨리 죽었나? 죽고 싶다고 죽어지나? 뭐 그런 거지.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이상에게 19세기가 나는 20세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선 천재들이 다 해버렸다.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쓰였고 새로 쓰인 것은 읽히지 않는다. 봉쇄하는 김에 지금 사는 21세기도 봉쇄했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그것'이 온다는 확신만 있어도 즐겁게 기다리겠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현실을 살며 바람이 전해주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희망을 잃지 마. 알고 보니 희망은 판도라 상자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온 사악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 보다 나아진 현실을 기다리고 있다. 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기다림은 무의미하다. 더 나은 내일, 혹은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그 기대는 실현되지 않거나 실체조차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와 유사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삶 속에서, 이유 없이 뭔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와 닮아 있다.
이렇듯, 내 기다림조차 이미 앞선 인간들이 다 소진했다. 내 기다림은 새롭지 않고 박물관에 박제가 되어 조롱거리로 전시돼 있다. 박제가 된 천재, 그 옆에 천재도 되지 못한 나는.. 그저 박제돼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