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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20. 2024

나의 모든 조각을 모아도 온전한 내가 아닌 #1

즉흥소설

"오랫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응.. (생각한다) 아니, 넌 친구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사실 잘 못 지내."

"흠, 별로 새롭지는 않군. 지난 번에도 그랬잖아. 석달 전인가?"

"맞아. 그때부터 계속 이래. 이런 상태야."

"한결 같다는 측면에서는 그 정도면 잘 지내는 거야. 음식 주문했어?"

"어? 아니. 네가 주문할 거잖아."

"그렇지. 뭐 먹을래? 뭐 먹지?" (메뉴를 뒤진다)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혼잣말이야. 너야 늘 똑같잖아. 아무거나. 그런데 그런 메뉴는 어디에도 없거든. 보자. 그냥 정식 먹을까?"

"응."

"스페셜 시켜도 되지?"

"응."

"그럼 일단 스페셜로 2개. 디저트는 나중에 시키자. 오케이?" 

종업원을 불러 능숙하게 주문한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래 네가 잘 못지낸다고 그랬어. 그래 이번에는 어떤 고민이야?"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뭐가?"

"그녀."

"그녀? 아, 그녀? 잘 되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때 같이 저녁 먹었다고 좋아라 했잖아."

"응, 밥만. 그 다음에 진도가 안 나가. 계속 밥만 먹어."

"같이 밥 먹으면 된 거지. 커피도 마시고, 술도 한잔 할 거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술 마셔. 하지만 그대로야."

"너 설마, 아직 키스도 안 한 거야?"

"못 했어."

"시도는 했고?"

"아니."

"그럼 안 한 거네."

"해보나 마나 실패할 것 아니까 안 한 거지. 결과적으로 못 한 거야."

"아, 새끼 쫀쫀하긴. 지금 그런 거 구분할 때냐? (종업원을 부른다) 여기요, 와인리스트 가져다 주세요."

"불가능할 것 같아. 차라리 로또 맞는 걸 기대하는게 낫겠어."

"야, 그래도 로또보다는.. 힘내. 임마. 와인 뭐 마실래?"

"피노누아만 빼고 아무거나."

"피노는 왜? 옛날에는 피노 좋아하지 않았나?"

"그때는 희망이 있었고. 지금은 없어."

"오케이. 피노 빼고 메를로는 괜찮지? 보르도 생떼밀리옹 할까? 가격이 좀 비싸긴 한데. 괜찮지?" 

"응."

"내가 재미없나?"

"누구 기준으로? 나야 재밌지."

"너 말고.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누구? 모르는 사람들? 그걸 어떻게 알아?"

"그래도 대충은 알 거 아니야? 넌 아는 사람도 많고."

"(고민하는 척) 재밌는 편은 아니지. 그래도 다른 장점이 있잖아."

"장점 뭐?"

"아는 거 많고, 나이도 많고."

"나이 많은 게 장점이야? 단점인 것 같은데."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니야. 요즘 여자들은 좀 안정적인 것을 원하는 애도 많거든."

"안정 싫은데."

"안정이 왜 싫어?"

"안정되면 안정이 깨질까 불안하잖아."

"(어이없다) 그럼 지금 불안정한 건 괜찮고?"

"불안하지는 않으니까. 늘 그래왔고."

주문한 와인과 음식이 나왔다. 둘은 말없이 식사에 집중한다. 와인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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