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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15. 2024

심야편의점 : 그여자 그남자의 사정  (마지막회)

휴가에서 돌아와서 수영은 일상이 더 괴로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출근을 위해 일어나는 것이 몇 배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죽을 정도로 피곤한 것도 아니고 불면증에 시달릴 때에 비하면 일어났을 때 머리도 그리 아프지 않았다. 다만 더 자고 싶었다. 너무너무.


퇴근해서 저녁 먹자마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도 잠이 모자라고,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12시간을 잤는데도 머리가 멍했다. 


“완전히 잠충이가 된 거 있죠. 아무리 자도 부족한 거에요.”

“와, 엄청난 반전. 혹시 그동안 못 잤던 잠을 한꺼번에 자는 것 아닐까요?”


“우리 인생에 잠의 총량이 있는 걸까요?”

“그럴까요? 호호.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일단은 닥치는 대로 잤죠. 잠이 오는데 안 자면 다시 불면증이 올 것 같다는 불안증도 있고 해서.” 


수영은 끝없이 자는 이유가 자는 시간은 길어도 숙면을 못 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먼저 잠을 잘 때 휴대폰을 무음 모드로 바꿨다. 회사에서 중요한 메시지나 전화가 올 수 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확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인데 퇴근 시간 이후 연락 안 된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은 저녁식사 후 반 컵 정도 마시는 물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깰 때까지 어떤 액체도 마시지 않았다. 소변이 마려워 잠이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침실의 커튼도 암막 커튼으로 바꿔 빛공해를 차단했고 옆집에서 나는 세탁기 소리나 층간소음을 듣지 않기 위해 착용감 좋은 이어플러그도 구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생활, 아무리 졸려도 10시 30분 전에는 자지 않았고 정각 6시에 일어났다. 목표는 7시간 30분간의 숙면! 인터넷에서 찾은 성인남자 적정 수명시간 7~8시간의 가운데 값! 잘자기 위한 수영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실패했죠?”

“어떻게 알았어요?”


지수는 빙긋 웃었다.


“성공했다면 멀쩡한 회사 관두고 편의점 심야 알바를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정확해요. 7시간 반은 턱도 없이 부족했어요.”


“그 정도에요?”

“일단 문제는 10시 반에 눕는다고 바로 잠이 오지 않아요. 반수면 상태로 새벽 한두 시까지 있다가 잠이 드는데 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 깨요. 소리나 빛을 차단하면 오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그럼 뭐가 문제인데요?”


지수가 묻자 수영은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내가 문제인 거죠. 원래 질 나쁘게 자는 습관을 가진 나.” 


문제는 더 있었다. 휴대폰을 무음 모드로 둔다 해도 잠이 깰 때마다 시간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휴대폰의 여러 알림을 체크하게 됐다. 그중에는 팀장으로부터 온 메시지도 있었고 답하면 답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부작용이 속출했다.


게다가 자다가 화장실을 안 가기 위해 물을 마시지 않았지만, 일단 깨면 물 한모금 마시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와야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바뀐 건 없이 누워있는 시간만 7시간 반으로 정하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너무 멍해서 승용차를 운전해서 출근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가끔은 반복되는 꿈을 꿨다. 회사에 출근한 꿈인데 깨보면 자고 있었고 다시 출근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아닌 것 알지만 회사에 있다가 꿈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뺨을 톡톡 때렸다. 그러다 마침내는 뺨을 때리는 꿈도 꿨다. 


“원래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에요? 난 거의 꿈 안 꾸는데.”

“꿈 안 꾸는 사람은 없대요. 기억을 못 하는 거지. 꿈을 많이 기억하면 그만큼 숙면을 못 한다는 것이고, 난 하루에도 서너 가지 꿈을 꾸니까 진짜 잠이 불량한 거죠.”


“그래서요? 어떡했어요?”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난 왜 이렇게 자고 싶을까? 이유가 뭘까?”


“찾았어요?”

“혹시 말이에요. 잠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생각 안 해 봤죠?” 


수영은 아침에 깨기 힘들 때마다 생각했다. 특히 주말에 12시간을 자고도 더 자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면, 계속 자고 싶게 만드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잘 수 있지? 고양이도 아니고’


그래서 졸음을 깨고 억지로 TV를 보거나 산책을 하면서 자는 것보다 유익한 일을 하려고 애썼다.


‘자는 것보다 유익한 일이 뭐지?’


주말이 쉬기 위해 있는 것이라면 자는 것보다 유익한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유익한 것 말고 의미 있는 것을 찾으려 했다. 인생이 자려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뭘 해야 인생이 의미 있을까요?”


수영이 인생의 의미를 묻자 지수는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면...”

“그렇잖아요.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의미 있는 일이 뭐 있죠? 지수씨 회사 왜 다녀요? 회사 다니는 게 의미 있는 일인가요? 회사가 인생의 목표는 아니잖아요. 그럼 돈인가요? 돈만 많으면 끝? 목표 달성? 그것도 아니죠?”


“그래도 잠만 잘 수는 없는 거 같은데. 잠자기 위해 산다는 건 너무 이상한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사람 앞에서 제대로 된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지수는 일단 동의하지 않았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잠만 자는 건 너무 무의미하다고. 그런데 깨 있다고 내가 유의미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안 본 드라마나 뒤적거리고, 가끔 친구 만나서 밥 먹고.”


“운동은 어때요? 의미 있지 않나요?”

“지금도 운동 많이 해요. 잘 자기 위해서지만.”


자세히 보니 수영의 상체가 반듯하고 승모근이 튀어나온 게 규칙적인 운동으로 단련된 것 같았다. 맨날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의 피지컬은 아니다.


“운동이 모자라면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아요. 더 피곤하기만 하고.”


수영은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지수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변명하듯 말했다.


“모든 대답이 준비돼 있군요. 큭큭, 그래서 운동말고 또 어떻게 해요? 잘 자기 위해서.” 


수영의 일상생활은 수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빼면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인생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잠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아침 7시, 편의점에서 퇴근하면 집에 가서 씻고 잠을 잔다. 일어나면 오후가 된다. 식사를 하고 체육관에 가서 1시간 20분 정도 운동을 한다. 운동 후에는 일상에 필수적인 일을 시작한다. 설거지와 청소, 빨래, 장보기 등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보든, 영화나 드라마를 보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잠이 오면 다시 잔다.


시간 제약을 받는 건 심야 편의점에 출근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나머지는 규칙적이라고 할게 거의 없었다. 잠이 오면 자고, 깨고 싶으면 깨고,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이 이렇게 많고 자유롭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뭐 하느라 그리 바쁘게 지냈을까? 


“그래도 편의점에서 일하면 수입이 많이 줄었을 텐데. 괜찮아요? 혹시 집이 부자? 내가 괜한 걱정을?”

“아니에요. 쓰는 걸 줄였죠. 살던 오피스텔하고 차를 처분하고, 나야 잠만 잘 자면 되니까 조그만 방으로 옮겼어요.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소파도 없고, 무소유의 실천이랄까? 하하.”


“뭔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나도 쓸모없는 것들을 잔뜩 끼고 살긴 하죠. 창고에 버리지 못하는 짐들도 가득하고. 집에서 밥해 먹는 일도 거의 없는데 조리기구도 많고. 맞다. 난 음식 쓰레기 건조기도 있어요. 몇 번 쓰고 안 쓰지만.”


“그러게요. 사람이 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하더라구요. 다시는 안 쓸 것 같아서 집 옮길 때 다 버렸는데, 또 사야 하고. 그래도 이제는 사기 전에 버릴 걸 먼저 생각하니까 좀 덜 사는 것 같기는 해요.”


둘이 얘기를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났고 곧 아침이 밝아 올 것 같았다. 묘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지수는 이제 집에 갈까 생각해서 몇 번 출입문 쪽을 바라봤지만 가고 싶지 않은데 굳이 가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나간다고 수영이 붙잡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수영은 가끔 시계를 보며 지수의 출근을 걱정했다. 이대로면 그녀는 한숨도 못 자고 출근준비를 해야 할 텐데, 잠 못 자고 출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수영이 제일 잘 아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걱정까지 해야 하나?


“그래도 미래에 대한 계획은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은 그래도...”


“그렇죠. 그게 제일 문제죠. 편하게 잘 수 있는 집은 있어야 하는데, 서울에서 내집 마련은 꿈도 못 꾸겠고. 심야 편의점도 평생 직업이 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시간 많으니까 계속 생각해봐야죠.”


“정말 앞으로도 잠자기 위해서 살 거에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요? 뭐라 하려는 게 아니고 좀 땡기는 인생이라서. 나도 그래 볼까 하는 유혹도 생기고.”


“앞으로는 모르겠고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요. 요즘 잘 먹기 위해서 산다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먹기 위해 운동한다고 하고. 난 뭐가 되고 싶다는 그런 꿈이 없으니까 그냥 잠이나 편하게 자려구요. 코알라는 하루 22시간을 자고, 말은 2시간 잔다고 하는데 말이 코알라보다 더 의미있게 사는 건 아니겠죠?”


“코알라까지 안 끌어들여도 돼요. 살기 위해 자는 게 아니라 자기 위해 산다. 뭘 해도 의미 없으니 애쓸 것 있나, 잠이나 자자. 이런 거죠?”

“네.”


“하긴, 먹고 사느라 편하게 자지도 못하는 사람 많으니까 잘 자는 것도 목표가 될 수는 있겠네...”

“갑자기 쉽게 인정하네요.”


“인정이랄 게 있나요. 각자 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지. 남한테 피해 주는 것 아니면.”


날이 완전히 밝았다. 이제 대화를 끝낼 시간이었다. 지수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 수영씨와 얘기하느라 밤 꼬박 샜네. 책임질 거죠?”

“네?”


“이 남자 봐? 무책임하게 안 봤는데. 같이 밤을 함께 보낸 여자에게 그게 할 말이에요?”


수영은 지수가 농담하고 있는 것이라 알면서도 당황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다음에 잠 잘 자는 노하우를 전수해줘요. 나도 요즘 불면증 때문에 죽겠어요. 여기 안 왔더라도 어차피 못 잤을 거라서.. 다음 근무일이 화요일 밤이라고 했죠?”

“네.”


“그럼 그때 봐요. 혹시 못 오더라도 기다리지는 말고. 안 온다는 건 잘 자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네 안 기다릴게요. 하지만.”


수영이 말하다 말고 머뭇거렸다. 지수는 나가려다 말고 다시 수영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뭐요?”

“만약 정말 관심 있다면 가르쳐 드릴게요. 내가 알고 있는 수면 호흡법 같은 것도 있고.”


지수가 빙그레 웃었다.


“네, 기대할 게요.”


지수가 나갔다. 그녀가 가져가려고 카운터에 놔뒀던 캔맥주는 그대로 있었다. 수영은 캔맥주를 카운터 밑에 별도로 보관했다. 이미 계산이 끝난 제품, 지수가 또 올 것이라는 증표였으니까. 


아침 7시가 되자 편의점 주인이 직접 카운터를 보기 위해 나타났다. 멀끔히 서서 그를 맞는 수영을 보고 스윽 웃었다.


“어제는 바빴어?”


손님이 좀 있었는지 묻는 우회적인 화법.


“아뇨. 거의 없었어요.”


수영의 말과 함께 포스에 찍힌 목록을 살펴보던 주인은 수영을 보지 않으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심심했겠네. 이래서야 심야에 영업하는 의미가 전혀 없잖아! 우리도 심야 무인점포로 바꿀까? 어떻게 생각해? 수영씨.”

심야편의점 그남자

심야편의점은 여기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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