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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Jan 12. 2016

여자의 등뼈를 쓰다듬을 줄 모르는 남자는 시시하다

그와는 등을 맞댄 채 잠들곤 했다. 두 번의 격정 끝에 마치 척추가 붙어 태어난 샴쌍둥이의 모습을 하고선 그렇게 각자의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주 보고 잠들지 않으면 서운한 사람이 있었다. 내게 등을 돌리고 잠들면 불안해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나는 각자의 호흡이 맞닿은 채 잠들지 않아도, 표정이 서로에게 보이지 않게 등을 지고 누워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게 중요했다. ‘등을 돌리다.’ 외면하고 멀어지는느낌 때문에 연인이 내게 먼저 등을 보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헤어질 때마다 돌아섰을 때 그의 뒷모습을 보게 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해서 의식적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곤 했다. 일종의 유기불안이 작동하고 있었나 보다. 그를 만나고 나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섹스를 할 때마다 서로가 나눠 가진 감정은 변치 않음이나 상처주지 않음에 대한 확신은 아니었다. 지금이 순간 우리 둘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가 끝날 때 끝이 나버린다고 하더라도 막연히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는 비겁하게 등을 돌려버릴 남자는 아니었다.


좋은 섹스를 할 줄 아는 남자들은 다르다. 그것은 근심 없는 페니스를 가졌거나 탁월한 테크닉을 가진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좋은 섹스라고 해서 반드시 잘하는 섹스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훨씬 더 충만하고 포근감을 안겨준다. 좋은 섹스를 하는 남자는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다. 겸손하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상대의 몸에 반응한다.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고정된 자기 방식을 고수한 채로 여자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에게 특화된 어루만짐을 할 줄 안다. 친밀하게 몸이 맞닿을 수 있는 사이에서 그런 행동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성의를 보이는 남자들이란 정말이지 드물었다.


나는 ‘여자의 등뼈를 쓰다듬을 줄 모르는 남자는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내 몸에서 나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내버려두지 않고 어루만질 줄 아는 것은 대단히감각적인 행동이라고 믿었다. 온몸을 구석구석 탐하며 나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탐구하고 싶다며 노골적인 호기심을 감출 줄 모르던 남자들도 서로가 나체가 되어 뒹굴게 되면 너무나도 빤하고 성급하게 몸을 쓰곤 했다. 그들에게중요한 것은 마치 삽입밖에 없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다. 지루하고 별 다른 거 없는 섹스나 하자고 그렇게 꿀이 발린 달콤하고 유혹적인 말들을 쏟아낸 것인가 싶었다.


그런 탓에 섹스를 하는 도중에 노골적이고 정확하게 “나의 성감대는 등뼈야,”라고 알려준다. 심지어 “견갑골바로 아래부터 허리까지의 등뼈를 중지와 약지로 가볍게 쓸어 내리듯 어루만져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빠뜨리고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말로 하는 게 아직은 어색한 사이라면 등뼈가 성감대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내가 먼저 그의 등뼈를 쓰다듬거나엎드려 누운 그의 등에 포개 누워 혀로 척추 라인을 애무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을 쏟아도 둔감한 남자들은 많았다. 섹스는 자기가 받고 싶은 걸 상대에게 해주는 것, 상대가 하는 것을 따라 해보는 것이라는 기본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내가 그의 몸 위에 올라가 일렁이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그의 손은 뻔하게 예상 가능한 가슴이나, 엉덩이, 허리를 잡는 게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내 척추를 쓸어 내렸다. 나도 모르게 쾌감에 온몸이 부르르떨렸다. 그것이 자신이 닿은 내 등뼈에서 비롯된 것임을 영리하게 알아차렸다. 그는 손가락을 몇 번이나 애를 태우며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적절하게 움직였다.손끝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자극에 견딜 수 없어 그의 위에 포개 안긴 채 파르르거리는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감출 수 없는 만족감에 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이런 감각을 놓치지 않는 남자가 무심하게 날 다치게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남자라면 끝을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다. 현재가 충분하니까 언젠가 이별이 찾아온다 해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기분이 들었다. 그저 앞선 두려움으로 지금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시시하지않은 남자를 만나서, 등을 어루만져질 수 있어서 그게 내게 충실한 위로이자 즐거움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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