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 Jan 26. 2016

머리카락

관능의 세계로 여자를 이끄는 것은 감언이설이 아니라 존중이다

짧은 커트 머리가 내게 더 잘 어울리고, 관리하기도 수월하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꽤 오랫동안 긴 웨이브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에서만 나오는 여성미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배가시켜 나가는 즐거움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성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스러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남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긴 머리카락을 손상 없이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의 수고로움을 알지 못하는 남자들에게 머리카락의 관능을 굳이 드러내 보이지는 않게 된다.  

   

남자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칭찬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만들듯 한 겹 한 겹 여자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을 벗기는데도 수월한 전략임을 알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를 수식할 때 아름답다와 예쁘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는 도통 신뢰할 수가 없다. 아름답거나 예뻐 보이는 소위 여성적 기호에 반응하는 남자라면 말이다.   

   

남자는 시각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즉 눈에 보이는 것에 쉽게 현혹이 된다. 앞서 걸어가는 여자의 미니스커트, 하이힐, 긴 생머리가 조화롭기만 한다면 그 뒷모습만 보고도 혹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런 종적 특성에 맞춰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그런 장치들을 잘 활용하라는 조언이 연애지침서에 가득하다. 그러나 뒤태 미녀의 옷을 벗겨보았더니 남자였다면 기겁할 게 분명하면서 단지 눈에 보이는 ‘여성스러운’ 치장만으로 여장남자에게도 반할 가능성이 짙은 남자는 너무나 단순하다. 물론 이성에게 유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때 여성스러운 코드를 활용하긴 하지만, 동물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인간적인 호기심과 인지 능력을 갖춘 남자가 필요하다. 세심하게 욕망할 줄 아는 남자의 태도를 원한다.     


머리카락만 해도 자외선이나 건조한 바람에 쉽게 상한다.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풍성하고 볼륨감이 살아있는 머릿결이라는 건 샴푸만 잘 골라 쓴다고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윤기 나는 머릿결을 위해 살롱에서 받는 케어의 전 과정, 각종 전용 제품들, 머리를 감고 말리는 방법 같은 것을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관능이라고 해서 그것이 자연적으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의 정성과 관심이 투영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을 사치스럽고 낭비라고 여기면서 타고나길 갖춰진 여성스러움을 원한다는 건 미숙하고 무지하다는 걸 드러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남자와 어떤 밤을 도모할 수 있을까? 여자가 아름다워지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노력을 간과하지 않을 때 잘 준비된 관능을 드러내고 싶다. ‘여성’이라는 하나의 코드로 뭉뚱그려지기 전에 여자도 각각의 개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남자 앞에서만 드러낼 수 있는 관능이 있다.      


온 갖가지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여자가’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상대라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제쳐 두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욕망을 드러낼 수 있다. 성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머리카락조차 섹스의 훌륭한 도구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남자와 보내는 밤이라면 그 긴긴 어두운 밤에 색이 입혀지다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기꺼이 그의 앞에 강아지 같은 자세를 취한 채로 치렁거리는 머리칼을 그가 손에 쥐도록 허락할 것이다. 목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굴욕적인 포즈를 취하게 되는 순간에도 부끄러움보다는 흥분감에 휩싸인 채 탄성을 토해내고 말 것이다.      


관능의 세계로 여자를 이끄는 것은 감언이설이 아니라 존중이다. 관음과 욕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 한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존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