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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Feb 11. 2016

엉덩이

관능을 결정하는 것은 엉덩이의 태도다


여성성의 증거를 가슴에서 확인하려고 드는 남자는 애송이다. 확연히 드러난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에서만 여성을 인식하고 성적 자극을 받는 남자라면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뭘 좀 아는 남자들은 엉덩이를 본다. 엉덩이의 형태도 중요하겠지만 관능을 결정하는 것은 엉덩이의 태도다. 엉덩이는 능숙함과 감각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첫 섹스의 순간 팬티를 끌어내리는 그의 손길에 맞춰 엉덩이를 살짝 들어주는 일은 이후 그 밤의 거침없는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처녀성에 집착하는 풋내기들에게 맞춰 일부러 미숙함을 연출하는 영악한 여자들도 존재한다. 여자는 필요에 따라 엉덩이를 뭉개며 얼마든지 수줍은 처녀를 연기할 수도 있다. 여자의 능란함을 오해하지 않는 남자만이 쭉 뻗은 관능의 세계로 질주할 수 있다.


남자만 엉덩이를 탐닉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 역시 남자의 신체를 파편화 해서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남자처럼 여성성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나 뻔한 부위만 욕망하지는 않는다. 여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부위는 거의 무작위에 가깝다. 연구조사 결과 여자에게 선호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신체 부위는 탄탄한 허벅지나 우람한 팔이 아닌 눈과 엉덩이처럼 남성성과는 거리가 먼 부위였다.


물론 남녀 구분 짓지 않고 튼튼한 허리와 단단한 허벅지를 기반으로 했을 때 엉덩이가 탐스러운 모양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그 노력의 시간을 높게 평가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아래에 누운 내 양쪽 어깨를 붙잡고 격렬한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그가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멈추지 말고 계속하길 원했기에 다리로 그의 무릎 뒤를 감싼 채, 박차를 가하듯이 엉덩이를 때렸다. 찰싹 소리가 크게 들리긴 했지만 찰나의 아픔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센 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는 본격 BDSM((구속, 복종, 가학-피학을 포함하는 성적 활동)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가 여자에게만 하도록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에서 쾌감을 얻으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즉흥적인 기분으로 그의 엉덩이를 때렸다. 그런 의 행위에서 몇몇 남자들은 섹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느꼈다.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그것이 즉각적으로 사그라들기도 했다. 섹스를 하면서 남자의 자존심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자존심의 연약함만 확인했다.


수줍고 어색하고 순진한 태도로 섹스에 임하지 않다는 게 문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가 원한다면 나 역시 그의 앞에서 엉덩이가 도드라지게 엎드린 자세로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굴 수도 있었다. 그가 나의 둔부를 강하게 쥐거나 볼기를 손바닥으로 내려친다고 해도 굴욕으로 느끼지 않을 게 분명했다. 비싼 도자기를 쓰다듬듯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아껴주는 섹스보다 흥미로움을 느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낯설고 새로운 자극은 서로가 좀 더 친밀해졌다는 증거였다. 내가 그러했듯 그 역시 음탕하고 뻔뻔스러운 대응을 해주길 바랐다.


서로를 성교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예의 없게 대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섹스 중 어떤 시도가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의외의 시도’는 자극을 높여준다. 그의 몸에서 유일하고 동그스름하고 살집이 많은 엉덩이는 내게 찰싹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욕망을 자극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좀 더 이성을 잃은 채 동물적인 밤이 되길 바랐던 것이지 정색을 기대하진 않았다. 상대의 기질을 섣불리 나와 동일시한 탓에 벌어진 실수였지만 그 순간 자신의 남성성을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남자들과는 실수를 만회할 다음 밤을 기약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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