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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Aug 25. 2022

냉장고에 바나나우유 넣어놨어

작은 행복에 대한 기억




12살, 9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키운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아이들은 알아서 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먹고살기 바쁘단 핑계로 살뜰히 챙기지도 못한다.

조금 더 에너지와 관심을 기울여야지 다짐했다 가도 알아서 하겠거니 할 때가 많다.

주말에는 아빠의 집, 주중에는 엄마의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모두가 함께 있는 그림 속에 담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성장에 나쁜 영향만은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배고플 때, 준비물이 필요할 때 외에 아이들은 내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 나도 아이들에게 더 잘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아쉬운 날들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아이들의 유년이 휘몰아치듯 내 삶에서 지나가고 있다.


어렸을 때 우리 엄마 역시 주말도 없이 바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형편은 어려웠고 일하는 시간 대비 휴식도 거의 없었으며 가족이 함께 란하게 외식하는 일은  년에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휴가도 따로 없이 일만 해야 하는 생활 속에서도 돌이켜 보면 우리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다정하게 챙겨 주지 않았던 엄마, 1년에 300일은 지쳐 예민해있던 엄마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다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엄마는   있는 모든 것을 해냈었다.

일요일 단 하루 엄마가 늦잠을 자는 날이면 엄마는 한없이 너그러워졌었다.

일곱 살 즈음 나른하고 여유로운 잠을 자는 엄마 품에 안겨 엄마 냄새를 한 껏 맡았던 날들이 기억이 난다. 꼭 끌어안고 엄마가 일어나  빠져나갈까 숨죽여 그 품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고 싶었다.

작은 아이도 잠을 잘 때면 내 옆에 딱 달라붙어 더운 여름에도 내 품에 파고든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렇게 파고들고 싶은 존재인 것이다.

 

이혼을 하고 초반 6개월은  아이들은 아빠와 살고, 나는 2주에 한번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멀리서 손을 크게 흔들며 엄마~~!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다람쥐 같은 아이들을 보며 매번 심장이 떨리고는 했다. 미안함과 반가움이 혼재된 떨림이었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만나면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 원하는 것을 다해주려고 애썼다. 애썼다기보다는 그렇게 라도 하지 않음 내 마음에 죄책감이 너무 커져버릴까 봐 두려움이 컸던 까닭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들을 데려와 내가 살고 있는 부모님 집에서 키우기로 했고 지금까지도 아이들은 매일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주말이면 신이 나서 스스로 짐을 꾸려 아빠가 살고 있는 창전동으로 간다.

엄마도 좋아하지만 아빠도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사실 우린 나쁜 케이스의 이혼가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일  울고 우울했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그 상황에서 컸다면 지금보다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제는 편의점에 들렀다가 바나나우유 두 단지를 사 왔다. 할아버지를 졸라 슈퍼에 가는 것 외에는 따로 간식이나 과자를 잘 사주지 않는다. 그래도 왠지 마음이 동해 바나나 우유를 집어 들었다.

저녁일을 하러 내려가기 전에 큰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냉장고에 바나나우유 넣어 놨어.”

저녁일을 하다 중간에 올라와 테이블을 보니, 바나나 우유 빈 단지가 두 개 놓여있다.

괜스레 짠해졌다.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이 팍팍한 생활 속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 마음 쓰는 일을 잊지 말자고 되새겼다.


순식간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일요일에 목욕탕에 가서 마신 바나나우유 하나가 그렇게 행복했던 날들이 떠올라 사실 아이들의 유년에는 별것 아닌 것들이 행복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되새긴다.

작게나마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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