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은 준비부터.
어제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항공권을 검색했다. 코로나 시대가 점차 지나가면서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기가 올라오니 도저히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어 나도 그 행렬에 결국 동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밤중에 혼자 항공권 검색만 몇 달을 하고 있던 차였다.
창이공항, 히드로, 샤를 드 골 이름만 보아도 설레는 공항 이름들을 보면서 정말 나는 설레려고 사는구나 싶기도 하고 도저히 돈을 못 모으네 벌써부터 죄의식이 끼어들기도 한다.
그래도 결정을 했으니 가벼운 쪽으로 생각을 전환하자. 항공권 검색을 시작으로 여행경비 계산, 아이들과 여행이라 부모 여행 동의서, 숙박에 관련된 자료 모으기 등 가지에 가지를 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몰아닥친다.
그 과정이 제일 재밌다는 게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아닐까? 막상 가서 계획한 미션들을 클리어할 때 보다 준비하는 시간 동안 구상하고 상상해 보는 재미가 여행의 백미인 듯.
너무 계획하려 하지 말 것-
너무 무리하지 말 것-
커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일정으로 짤 것-
세세한 항목들을 적기 전에 대전제를 미리 새겨 넣어 준다. 그런데 이미 무리한 일정으로 항공편을 예약하려 하니 친구가 말렸다. 그렇게 했다간 전체 여행이 힘들어진다고 특히 아이 동반 여행에서는 정말 무리라고. 아차-싶어 바로 수정을 하고 버려야 할 가치는 버린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과 닮아 있다. 생각들을 나열해 기록하고 그 기록을 다시 읽어 보며 수정을 할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
글을 소소히 쓰면서도 제대로 된 탈고와는 거리를 둔 글쓰기를 반복하는 내가 그래도 가진 장점은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
글 내용이나, 아이디어- 그리고 계획들에 대해서 신뢰하는 친구가 해주는 얘기들, 처음 본 사람이 명쾌하고 적절하게 집어 주는 것들에 대해서 열려있는 편이다.
나의 생각이 나 계획을 수정 가능한 사람이라는 점이 내가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 같다.
준비의 시작부터 그야말로 수 억 깨지기 시작하는 여행이지만 이미 방아쇠는 당겨졌다.
돌이킬 수 없다. 그냥 밀고 나가기로 한다.
나이가 들수록 뭐든 실행하는 게 더 어렵다. 길게 짠 인생의 계획에 변수가 생기는 게 혼란스러워진다. 5년 후에 얼마- 모을 것을 예상했는데 그 계획은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러나 그 변수들을 일일이 제어할 수도 없거니와 좀 그래도 되겠다 싶어졌다.
어제 마신 술의 숙취가 센 오늘이어서 그런지 만사 또 다 귀찮아졌지만, 일단 내일은 오전에 커피를 마시고 항공권을 사버릴 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