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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Oct 04. 2022

요리 요일

사람을 성장시키는 요리


부모님이 양평 집에 가계인 며칠 동안은 내가 대식구의 식사를 책임진다. 아침에는 도저히 일어나기가 힘들어 잘 안 하지만 점심, 저녁은 내 손에서 여럿 식구의 식사가 만들어지는데 모두 맛있게 먹어주니 매번 보람을 느끼고 있다. 오늘 한 요리는 소고기와 표고버섯을 잔뜩 넣고 청경채, 알 새우, 양파 등을 볶다가 간장, 설탕, 굴 소스를 넣고 물에 갠 전분을 풀어 완성한 잡탕-

쌀쌀한 날씨에 뜨끈하고 부드럽게 들어오는 맛이 너무 좋았다. 밥 위에 올려 슬슬 비벼 먹으면 속이 포근해진다. 어제는 밀푀유 나베에 산 낙지를 올려 바글바글 끓였다가 소스에 푹 찍어 먹고, 남은 낙지로 낙지볶음도 했다. 한 번에 6-7명은 먹을 양을 만드니 가성비가 좋다.  아이들은 오므라이스를 해먹이고 점심에 끓인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곁들여 준다. 휘뚜루마뚜루 그야말로 후다닥 만들어 내는 내 손이 나도 기특하다.

표고버섯은 버터와 소고기 다진 것을 넣고 솥밥도 해 먹고 지난 강릉 여행에서 사 온 가자미는 가자미조림이 되었다. 카레는 주방 이모가 좋아하셔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하는 메뉴, 카레의 물을 사골국물로 잡기 때문에 당연히 깊고 부드러운 맛이 나온다.


다진 고기와 다진 새우 다진 양파 등을 넣고 버무려 속을 만들고 양배추 데친 것으로 감싼 후 크림소스에 푹 익혀 내는 크림소스가 베츠 롤, 거기에 파스타 사리- 큼지막한 토마토를 다이스 해서 소고기와 양파 당근 등을 다져 넣고 한참을 약불로 끓이다 토마토 페이스트, 타임, 토마토케첩, 치킨스톡 등으로 간을 맞춘 토마토 스튜, 슬라이스 한 감자에 육두구 파우더를 치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생크림, 치즈 등을 넣고 오븐에 익히는 도피 누워, 생새우가 있을 때 종종 해 먹는 국민 와인 안주 감바스까지 다양한 요리들을 매주 만든다.

계절 식재료로 만드는 음식들을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은 계속 요리를 하게 하는 힘이 된다.

무엇을 만들어도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들이어서 고민 없이 자신감 있게 요리 실력이 늘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켜 먹는 음식, 나가서 사 먹는 음식의 횟수가 줄고 재료비에 비해 훌륭한 식사를 하고 있다. 식구가 여럿이면 그런 점이 제일 뿌듯한데 버리는 음식 없이 바닥까지 싹싹 비워지는 냄비는 설거지하기도 쉽다.

내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먹이는 사람이 되다니. 역시 인생이란 알 수 없구나.

밥하는 게 제일 싫었던 날들이 까마득한 전생과도 같다. 요리를 하다 보면 아이들 어릴 때 자주 해 먹던 음식들도 종종 하게 되는데 그때의 감정과 기억들이 떠올라 애잔해지기도 한다.

늘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추억들은 내게 애틋함보다는 아픔이 되어 시큰하게 가슴을 움켜쥐고는 한다. 잦은 원망과 책망에서 벗어난 지금을 감사하자.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요리에 집중한다.

요리를 할 때면 잡생각을 떨쳐내고 오로지 재료들의 상태와 진행에만 집중하게 되니 저절로 명상 효과를 볼 수 있다. 아무 생각 안 들고 눈에 보이는 앞의 것에만 신경과 정신을 받칠 때 너무나 마음이 편해지고는 하는 것이다.


어떤 음식은 아빠가 좋아하시고, 어떤 음식은 엄마가 좋아하시고, 같이 일하는 이모와 언니들의 음식 취향도 알게 되고, 요리를 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의 취향과 마음도 들여다보게 되니 저절로 폭이 넓은 사람이 된다. 매주 내가 요리를 담당하는 요리 요일이 되면 창의력과 정보력이 합쳐져 작은 파티들이 펼쳐지니, 요리하는 자체로 나는 성장 중이다.


요리는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맛있게 더 맛있게 요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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