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조용히 내려앉은 서촌의 밤길을 걸었다. 추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매고 비누 만드는 수업에 늦지 않으려 종종걸음으로 걸어간 거리에는 작은 상점들이 온화한 불빛을 뿜으며 아기자기하게 거리를 밝혀주었다. 언뜻 보기에도 이야기가 가득해 보이는 가게들을 하나하나 방문해서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와인 한 잔 기울이고 싶었지만 비누 수업이 끝나고 나니 어둠이 더 깊게 깔려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은 상태- 결국 경복궁역 근처의 야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 주쯤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는 유진 언니와 새로운 환경에서 신선하게 만날 사람들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신혼 재미에 담뿍 빠져있어 보이는 (본인은 설레설레하지만 ㅎㅎ)
연자 언니와 맥주를 마셨다. 만나면 이렇게 알콩달콩 재밌는 언니들과 이웃이 되어 산다면 매일이 즐거울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웃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친구로 둘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의 얘기를 나누기에는 밤은 턱없이 짧았고 아쉬운 작별을 하며 택시를 잡아탔다.
축축하고 싸한 공기가 깔린 밤거리를 돌며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세근 세근 갓난 아기처럼 잠들어 있었다. 만들어 온 비누가 들어 있는 배낭 안에서 비누의 향이 진득하니 베어 있어 그 공간에서의 기억이 향으로 남겠구나-향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기억과 잘 어우러진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향수를 새로 사 여행 내내 그 향수로 곳곳을 몸에 기억하고 온다는 사람들의 루틴처럼 나에게도 어울리는 향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에센셜 오일의 익숙한 향에 아주 작게 몇 방울 이색적이고 독특한 향을 섞으면 너무나도 매력적인 향이 탄생된 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사람에게도 그 몇 방울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타인과 구분 짓는 자신만의 향과 멋을 가진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니까.
서촌에서의 밤은 짧았지만 그녀들과의 시간이 늘 그렇듯 그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매력들이 있어주어 나에겐 특별한 밤으로 기억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