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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Oct 21. 2022

스웨터를 꺼냈어.

나만의 월동준비


가을 초입에 샀던 아이의 겨울 스웨터를 꺼내 입히면서 월동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10월인데 이미 체감은 겨울이었던 지난주였다. 옷장 한편에 접어 두었던 전기장판을 꺼내서 뜨듯한 아랫목을 만든 것은 나뿐만은 아닐 터-

​그 옛날, 겨울은 내게 춥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계절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화장실이 밖에 있어 잠에서 깨어 화장실 가는 게 무섭고 추워 괴로웠고, 뜨거운 물을 끓여 머리를 감는 것 자체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유난히 춥게 입고 다니는 버릇 때문이기도 한데 얇은 스타킹 한 장에 딱딱하게 얼은 힐을 신고 밤거리를 다녔던 기억이 겨울은 ‘찌르는듯한 고통’으로 남았다. 아직도 남들 히트텍 다 입는 한파 중의 한파가 찾아와도 겹겹이 입으면 답답한 느낌 때문에 봄가을에 입는 옷으로 버티는 미련하고 미련한 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작년에도 아빠가 사주신 검은색 내복이 상자 째 그대로 있다.

올해는 좀 챙겨 입어야겠다고- 몸이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요즘은 나에게 당부를 해둔다.

​어제는 브레이크 타임에 근처 쇼핑몰에 가서 아이들 도톰하고 가벼운 플리스를 두 벌 사서 왔다.

부드럽고 따뜻한 옷 속에 파묻혀 얼굴만 빼꼼 나와있는 막내를 보니 겨울옷은 아이들을 더 귀엽게 보이게 해주는 것이었지- 하고 어린 시절 발달이 우주복을 입혀 곱게 담요에 싸서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을 키우던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았었네-

체온과 체온이 만나 품 안속에 쏙 -아이를 안은 나는 그 어느 시절 보다 따뜻한 겨울들을 났었다.


​연탄을 기부하고 달동네에 연탄배달을 하던 연예인과 유명 인사의 미담이 연말 뉴스를 장식하고 연말이면 거리에 음악이 울려 퍼지던 90년대의 기억은 겨울에 대한 따스한 기억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내가 정말 고인 물이구나 하면서 내 나이가 생생하게 숫자로 머리 위에 뿅 하고 표시되는 것만 같다. 왜 노년을 계절로 치면 겨울로 비유하는지 알겠어 -라는 마음으로 파고드는 추위에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눈이 소복이 쌓이면 개와 어린이만 신나한다는 말도 남의 말이 아니다. ㅎㅎ

집 앞 눈을 치우는 고된 작업이 겨울의 수고 중에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그래도 겨울이라 따뜻하게 당기다 보니 설렁탕집은 성수기라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지독한 한파가 와도 이 골목까지 찾아드는 사람들이 고맙고, 신기하기만 하다. 이번 겨울은 작년에 아빠가 사주신 내복을 꺼내 조심조심 나를 아껴주며 보내야지. 도톰하고 부드러운 양말을 사서 자는 아이들의 발에 신겨줘야지.

지하에 덩그러니 남겨진 라디에이터를 가지고 올려다 놔야지.

편의점에 들러서 호빵이랑 군고구마랑 사서 아이들이랑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도 나눠야지.

어제 옷 가게에서 봐 놨던 캐시미어 장갑도 하나 사놔야지.  

쉽게 트는 손발에 보습제를 듬뿍 바르고 자야지.

아무리 추워도 마음까지 추워지진 말아야지.


이렇게 이른 월동준비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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