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내일이 할머니 생신이니, 카드를 쓰라고 어린 딸아이한테 얘기를 해두었더니 책상에 가만히 앉아 한참을 꼼지락거렸다. 다음날 아침 미역국이 놓인 대가족 밥상 앞에서 할머니에게 카드를 건네는 고사리 손, 편지와 함께 마사지 쿠폰도 몇 장 만들어 넣어 놓은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귀여워서 도치 엄마는 혼자 꺄르르 웃었다. 점심 일을 마치고 집에 올라와보니 아이 책상에 고치고 또 고친 편지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짧은 몇 문장의 글을 쓰면서도 아이는 여러 번 고쳐 써 정성 있는 글을 선물한 것이었다. 나도 아이일 때는 지우개를 가까이 여러 번 글을 고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연히 여겨 왔는데 어느 순간 글을 쓰면서 고치는 습관을 잊어버린 것 같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보면서 살을 붙이고, 다듬는 교정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을 번거로워했다. 아이의 교정 흔적들을 보면서 앞으로 글을 쓸 때에는 다시 한번 꼭 읽어 보면서 흐름을 다듬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몇 문단의 글을 갖고 길고 풍부하게 만드는 작업도 연습해 봐야지.
그래도 두 달 가까이 거의 매일 글을 쓰면서 습관은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다. 왠지 매일 하는 것을 안 하면 불안해지는 나의 강박을 적절히 잘 이용하는 스킬이 생겨서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나만의 약속을 다짐하고, 실행하는 힘이 길러졌다.
책을 다양하게 읽는 것은 아직 습관화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서 그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씩 삼켜 나갔던 예전의 취미를 다시 불러와야지.
그동안 썼던 나의 일기 형식의 글을 깊은 밤 천천히 정독해 보면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어떤 생각으로 지난주를 보냈는지, 지난달에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문장에 공감하며 누구보다 재미있게 나를 관찰한다.
예전에는 픽션도 종종 쓸 정도로 상상과 아이디어가 넘쳤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꿈같이 펼쳐지던 무한한 상상력은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다.
그래도 잠재 돼 있는 뇌의 어떤 부분의 먼지를 털어내고 닦고 조여주면 다시 윙윙 돌아 재생산하지 않을까? (이런 것도 상상이라면 상상일 테지.) 글을 쓸 때면 뇌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경험들을 상기하고 이야깃거리를 주우며 길을 닦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얼마나 건강한 운동인가!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이 스텝과 스텝이 앞으로, 뒤로 이동하며 내 머릿속 플로어를 가득 채우는 이 기분이 좋다. 새로운 낱말들을 배워가면서 또 나만의 단어들을 만들어 내면서 재치 있는 표현으로 꽉 찬 글을 쓴다면 숙련된 무용수가 된 느낌일 것 같다.
고치고 고쳐 쓰면서 다듬어 가는 것이 글뿐만은 아니지. 사는 것도 그런 것의 반복이다.
비록 마음이 아프고 후회되는 것이라고 해도 복기하고 복기하면서 덜 아프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내 마음을 위한 습관이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