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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Oct 22. 2022

고쳐쓰고 고쳐쓰면서.



어젯밤, 내일이 할머니 생신이니, 카드를 쓰라고 어린 딸아이한테 얘기를 해두었더니 책상에 가만히 앉아 한참을 꼼지락거렸다. 다음날 아침 미역국이 놓인 대가족 밥상 앞에서 할머니에게 카드를 건네는 고사리 손, 편지와 함께 마사지 쿠폰도 몇 장 만들어 넣어 놓은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귀여워서 도치 엄마는 혼자 꺄르르 웃었다. 점심 일을 마치고 집에 올라와보니 아이 책상에 고치고 또 고친 편지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짧은 몇 문장의 글을 쓰면서도 아이는 여러 번 고쳐 써 정성 있는 글을 선물한 것이었다. 나도 아이일 때는 지우개를 가까이 여러 번  글을 고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연히 여겨 왔는데 어느 순간 글을 쓰면서 고치는 습관을 잊어버린 것 같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보면서 살을 붙이고, 다듬는 교정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을 번거로워했다. 아이의 교정 흔적들을 보면서 앞으로 글을 쓸 때에는 다시 한번 꼭 읽어 보면서 흐름을 다듬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몇 문단의 글을 갖고  길고 풍부하게 만드는 작업도 연습해 봐야지.

그래도 두 달 가까이 거의 매일 글을 쓰면서 습관은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다. 왠지 매일 하는 것을 안 하면  불안해지는 나의 강박을 적절히 잘 이용하는 스킬이 생겨서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나만의 약속을 다짐하고, 실행하는 힘이 길러졌다.


책을 다양하게 읽는 것은 아직 습관화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서 그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씩 삼켜 나갔던 예전의 취미를 다시 불러와야지.

그동안 썼던 나의 일기 형식의 글을 깊은 밤 천천히 정독해 보면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어떤 생각으로 지난주를 보냈는지, 지난달에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문장에  공감하며 누구보다 재미있게 나를 관찰한다.


예전에는 픽션도 종종 쓸 정도로 상상과 아이디어가 넘쳤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꿈같이 펼쳐지던 무한한 상상력은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다.

그래도 잠재 돼 있는 뇌의 어떤 부분의 먼지를 털어내고 닦고 조여주면 다시 윙윙 돌아 재생산하지 않을까? (이런 것도 상상이라면 상상일 테지.) 글을 쓸 때면 뇌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경험들을 상기하고 이야깃거리를 주우며 길을 닦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얼마나 건강한 운동인가!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이 스텝과 스텝이 앞으로, 뒤로 이동하며 내 머릿속 플로어를 가득 채우는 이 기분이 좋다. 새로운 낱말들을 배워가면서 또 나만의 단어들을 만들어 내면서 재치 있는 표현으로 꽉 찬 글을 쓴다면 숙련된 무용수가 된 느낌일 것 같다.

고치고 고쳐 쓰면서 다듬어 가는 것이 글뿐만은 아니지. 사는 것도 그런 것의 반복이다.

비록 마음이 아프고 후회되는 것이라고 해도 복기하고 복기하면서 덜 아프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내 마음을 위한 습관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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