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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Nov 05. 2022

2008년의 파리여행


여행은 역시 준비할 때가 제일 즐거운 법-


무려 반년 후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매일 새롭게 한 가지씩 배우고 있다. 특히 동선을 짜면서 그 지역도 파악하고 날씨도 체크하는 등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데 자연스럽게 수년 전 (거의 십 년도 더 전의) 첫 번째 유럽여행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2008년에 떠난 여행은 도쿄를 경유하여 런던과 파리, 이탈리아를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그때 유학 중인 친구들이 많아서 친구들 집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일정이 꽉 찼던 여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미련했던 나는 마냥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망치고 돌아온 것만 같아 세월이 꽤 흐른 지금에 와서도 후회가 남지만 뭐 그래서 이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잔뜩 먹고 숙취가 가시지도 않은 상태로 여행을 떠난 나는 스톱오버로 경유한 도쿄에서 밤새 끙끙 앓았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과 오한, 열이 이삼일 간 이어졌는데도 무식하게 약도, 휴식도 없이 여행을 지속하고 술도 마셨다. 나중에 가서야 내가 신우신염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 긴 한 달여의 여행 기간 내내 나는 늘 춥고 아프고 힘들었다.


여행 막바지가 돼 서야 그나마 음식 맛도 느끼고 잠도 잘 잤었던 기억.


그래도 그 와중에 몸이 저절로 회복됐다는 것은 지금 와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젊다는 것은 그렇게 무섭도록 대책 없는 대신 무섭도록 회복력이 빠르다.


벨기에를 여행하고 온 연자 언니와 파리 북 역에서 만나 도심에서 꽤 먼 한인 민박집에 머물다가 대만인 모녀의 여행을 보며 나도 언젠가 딸을 낳으면 같이 파리를 여행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일 (그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된다!)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르고 그 언덕길에 너무 맛있는 로컬 음식점에서 싸고 맛있는 최고의 식사를 한 날, 불어로 친구가 레스토랑의 잘생긴 스텝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해 연자 언니가 윙크를 받은 일등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유쾌하다.


누군가에게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한 거라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웃는 친구의 센스에 다 같이 미쳤다며 웃었다. 파리에서 가장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스폿들을 고루 데려가고 우리에게 최고의 에스프레소 맛도 보여 준 그 파리의 멋쟁이 친구에게 이번 여행에서는 꼭 감사를 전달하고 와야지. 그의 집에서 밤새도록 얘기하며 보낸 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이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3명이 셰어하는 그 집에서 예술가를 꿈꾸는 친구들을 만나서 그 친구들이 만든 정체불명의 유럽 식재료들로 재탄생한  김밥이며, 비빔밥을 먹으며 유럽여행 내내 먹은 것들 중에 최고로 맛있는 음식들을 맛보았었다. 그렇고 보니 이미 그때 친구가 만들어 준 고추장 양념을 한 닭고기 구이 +아보카도+샐러드 조합에 아! 이 메뉴야! 하고 엄청난 아이디어를 얻었었네. 지금은 너무 흔한 퓨-전 스타일이 돼버렸지만 그때 맛보았던 그 비빔밥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만 같다.


그 타고난 요리사가 지금은 파리 시내에 유명한 캐러멜 가게를 운영하니 당연한 수순인지도.


정말 그 친구들은 멋있게 살고 있었구나 - 워낙, 은근, 쫄보인 나는 엄두가 나지 않은 청춘과 독립이 어우러진 삶이 그곳에 있었다. 에펠 근처에서 에펠탑 모형 열쇠고리를 강매 당하고 돌아서서는  장미꽃 한 송이를 로맨틱하게 받고 또 강매 당하고-그저 그 상황이 너무 웃기고 황당해서 크게 웃기 바빴던 나의 첫 파리 여행-빨간색 재킷에 빈티지 모자를 눌러 쓴 어느 파리지엥 못지않은 멋진 스타일의 연자 언니와 다니는 것도 너무 즐거운 일이었는데 몽마르트르에서 젖병에 술을 담아 쭉쭉 빨던 아저씨가 연자 언니에게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라며 한눈에 홀딱 반한 일도 떠올릴 때마다 크게 웃게 된다.


어두운 밤, 에펠탑 앞 메리 고 라운드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은 내내 기억될 것만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으로는 절대 못 살 최고의 가이드와 친구가 있었던 나의 첫 파리 여행-


다시 간다면 그들이 너무 그립고,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겠지. 이미 기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애틋함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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