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그림자처럼 눈가를 메우는 아이라인을 그리고 길을 나선다.
좀 못돼 보이고 싶은 날,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날- 날을 세우듯 더 길고 짙게 그려지는 나의 아이라인. 내면의 연약함을 감추고 싶을 때마다 아이라인 펜슬은 쉬이 닳았다.
짙은 눈 화장의 여자와 문신이 가득한 팔뚝을 자랑하는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으면 나는 그들의 연약하고 순진한 구석을 발견한다. 드러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감추려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홍대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목덜미까지 문신을 한 아직 아이에 가까운 청년을 보며 “저런 애가 오히려 착하다니까.” 사람을 많이 겪어 본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했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언제나 예외란 것은 있는 것이고- 싸잡아 평가하며 여론몰이 하는 것도 아니지만 - 내가 겪어 본 짙은 색채의 사람들은 순진한 구석이 많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진한 눈 화장을 하고 공연장에 찾아오던 열여섯 살 소녀도-
어느 날 갑자기 등에 커다란 재규어 한 마리를 문신하고 온 나의 오빠도-
하물며 스모키 메이크업이라는 이름 아래 판다 같이 진한 눈 화장을 하던 나조차도-
사실 굉장히 어리숙했던 것이다.
사실 굉장히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