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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Feb 07. 2023

봄의 옷감

나풀 나풀




입춘이 되자 언뜻 언뜻 봄의 기운이 스친다. 마음은 설레고 몸은 나른해지는 그런 봄이 곧 시작되려 하고 그런 틈 사이로 엄청난 물욕이, 주관적으로 다르게 말하면 생의 의욕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못 떼면서 작지만 존재감 확실한 귀걸이며, 발은 편하지만 날렵하게 여성스러운 라인의 플랫슈즈며, 하늘하늘 가볍게 일렁이는 시폰 소재의 블라우스를 염탐한다.


지난주부터 내내 계속된 나의 물욕의 터짐이 통장 잔고를 한없이 가볍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의욕적인 나의 모습이 오랜만이라 격려를 해주고 있다.


그래, 더 파사삭  늙어버리기 전에 예쁜 옷, 예쁜 것을 실컷 누려보자. 다행히 한도가 있는 욕망을 가진 터라 미래의 내가 허덕일 빚더미에 앉을 일은 없을 테니 내 옷, 다야 옷 사면서 여자들의 봄을 만끽해 보기로 했다. 추가 저축은 잠시 미루고- 하반기로 미뤄두고- 올 상반기는 누리고 즐기는 데에 죄책감을 갖지 말고 몰입해 보자고 온전히 즐겨 보자고 한들, 사실 그렇게 흥청 망청 자유로운 사람도 되지 못하는 나. 각자의 깜냥에서 소비는 이뤄지는 것이니 미래의 나야, 안심해도 좋아.


지난밤에는 일을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동대문 밤 시장을 찾아갔다. 아직은 봄이 완전히 들이닥치지 않은 간절기의 옷 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새싹처럼 빼꼼- 오랜 낙엽이나 나뭇가지 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봄의 옷들을 캐치해서 들고 왔다. 부드러운 코랄 컬러와 노란색이 섞인 커다란 숄과 구멍이 뽕뽕 사랑스럽게 나 있는 아일릿 블라우스. 그리고 단순한 디자인의 작은 큐빅 귀걸이.


들판에 나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을 몇 송이 꺾어 들고 와 테이블 위에 다정히 꽂아 둔 것 같은 마음으로 칙칙한 겨울 옷장에 겨울 동안 애쓴 두꺼운 옷을 걷어 내고 싱그러운 봄옷을 걸어 두니 밝은 기운이 역력하다. 아직은 추우니 날씨를 봐서 더 이상 얼어붙지 않을 어느 때에 옷장의 장면을 확 정리해 주기로 한다. 나풀나풀 날아 들어온 듯 가볍고 꿈같은 봄의 옷감으로 가득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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