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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서 말 못 해, 운전면허 4수라고

by midnightsalon

나는 운전면허 4수생이다. 이명박 시절 도로주행에서 세 번이나 떨어진 사람. 이걸 들은 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넌 그냥 도로에 안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라는 교통경찰형, "이명박이 그때 면허 다 망쳐놨지"라는 정치평론가형, "이런 사람 처음 봤어!"라는 감상평까지.


잠깐 이야기의 핸들을 입시 쪽으로 틀어보겠다. 우리나라에서 재수는 꽤 흔하다. 드물게는 삼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4수 이상의 N수생은 희귀한 존재다. 의대나 전문직을 목표로 10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일반 대학 입시에서 3수를 넘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교육부에 따르면 의대 합격생 중 4수생 이상 비율은 2022년 17.1%라고 한다. 의대 입시 기준임을 감안할 때 비의대에서 4수생의 입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입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가 대학입시 4수생이었기 때문이다. 면허도 4수, 입시도 4수라니. 지독히도 운전도 공부도 못하는 사람이거나, 불운의 아이콘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4수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다른 글로 적어보겠다. 아무튼 4수를 거쳐 드디어 대학 신입생이 된 나는 굉장한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현역으로 입학이 가능했던 대학에 수능을 세 번이나 더 보고 들어간 셈이 됐기 때문이다.


외고생 자식의 SKY 입학을 당연하게 기대했던 부모님의 실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입생들은 내가 고3일 때 중3이던 동생들이었다. 08학번 선배들과 동기생이 11학번으로 들어와 있으니, 자기소개할 때마다 나는 튀는 존재였다.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쪽으로. 그래서인지 2011년은 수치심의 해로 기억된다. 그때의 나는 흡사 리틀 다자이 오사무였다.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라고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싶었을 만큼. 입시 실격은 곧 인간 실격이라고 생각했다.


4수생의 가장 큰 비극은 입시하는 내내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었다는 점에 있다.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주부도 아닌 어정쩡한 '준비자'의 포지션. 그런데 2011년은 이명박 대통령이 운전면허 취득 절차를 간소화하여 면허가 남발되던 시기였다. 대학 입학이 몇 년 늦었던 만큼, 다른 사회적 태스크들을 얼른 수행해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운전면허의 세계로 이끌었다. 뭐라도 또래들이랑 비슷한 걸 해내고 싶었다. 입시에 낭비한 시간을 벌충하고, 낙오자가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 어른의 상징인 면허를 따는 것은 나의 '사회인 편입 프로젝트'에 딱 맞는 전략이었다. 어쨌든 '남들만큼', '남들처럼'이 모토였던 시절이다.


그렇게 베프와 호기롭게 운전학원에 등록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돈을 내고 학원을 다니면 면허가 나온다, 여기저기서 들은 것처럼 면허 따기가 쉬워졌으니, 남들 하듯 절차를 충실히 밟으면 면허는 주어질 것이다. 외국어 고등학교에만 들어가면 무난하게 SKY에 들어갈 거라고 확신했던 중 3 때의 나와 마찬가지의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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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