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que happiness

by 한밤

극심한 시련에 노출되어 보니,

진정으로 존경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예전엔 부유한 사람, 아름답고 멋진 사람,

눈부신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실패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비로소 위대하게 보였다.

그들은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외면당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걸까.

그제야 모든 게 퍼즐처럼 이해되기 시작했다.

눈이 뜨이는 경험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불행 unhappiness란 단어 속,

un 뒤에는 ique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unique happiness, 유니크한 행복.

그건 내가 불행을 새롭게 보는 관점이 되었다.

어쩌면 불행은

독특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입구인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우리는

‘행복’보다 ‘불행’을 바라봐야 할 때이다.

우리는 늘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건 불행이다.

불행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진가를 드러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숨 막힐 때는

딱 하루씩만 버티며 지나야 한다.

울고 싶다면 참지 말고 울어야 한다.

눈물을 참다 보면

오히려 그 무게에 쓰러지고 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가 속했다고 믿었던 세계에서 이탈하고,

내가 믿었던 정의들이 무너지고,

더 많이 가지려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했던 것들이 모두 쓸모없어지고 나면

그제야 보인다.

불행 속에 숨어 있던 길,

내가 견뎌낸 힘,

그리고 내가 알게 된 진리.

그 모든 것은

행복으로부터 한 발 떨어졌을 때 비로소 드러났다.

찰나 같은 현실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갈 때 꼭 필요한 유익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불행이 우리 사회에서

‘형벌’과 ‘저주’로 거론되고,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건

지나치게 왜곡된 해석이라 생각한다.


불행은 이제라도,

행복보다 유니크한 가치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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