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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선 Nov 16. 2023

그녀의 연극: 이 세상 모든 외계인을 위하여

#2 예측불허 날 상상 속으로 밀어 넣은 예술가, 고은지의 연극

‘어느 행성에서 왔나요? 그곳도 멜로디언이 있군요. 뭐라고 부르던가요.’


외계인의 집에 방문했다. 아마도 2층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멜로디언 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소리를 따라 계단을 오르려다 방명록을 써달라는 삐뚤빼뚤한 글씨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췄다. 귀에 들려오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한 줄을 끄적이고 나니 빨간 벽을 가득 채운 외계인의 모습이 보였다. 코스모스 밭을 지나 어린 왕자와 속삭이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며 자신의 행성을 떠올리는 듯 가벼운 미소를 띤 외계인은 어딘가 행복해 보이기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어색한 웃음과 작은 탄식을 나누던 나와 다른 지구인은 어느새 계단 끝에 도착했다. 그리고 저 멀리 흔들리는 손을 보았다. 사진 속 외계인이었다. 분홍색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안녕? 심심했어.’


발간 볼에 빼곡히 붙어있는 반짝이, 눈썹이 보이게 짧게 자른 앞머리와 말괄량이 삐삐 같은 주황빛 머리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은 우릴 향해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나와 다른 지구인은 서로를 향해 서서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눈썹 사이 희미하게 그어진 줄이 보였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 코털이 보일 듯한 코를 지나쳐 웃을 때 특히 자연스러운 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한 발 더 다가서서 서로의 팔을 맞닿았다. 눈을 감은 채 손을 잡고는 서로의 손에 흐르는 미묘함을 느꼈다. 따뜻하게 맞닿는 숨결 속 바람이 귀에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뜨거운 햇빛에 눈앞이 빨개졌다. 조금만 더 감고 있으면 눈앞이 흐릿해질 것만 같은 눈을 뜨고는 서로의 팔을 툭툭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외계인은 자신의 방 안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파란 조명이 켜진 방에 들어서자 마치 바다에 온 듯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떤 바다든 좋으니 상상해 보라는 말에 나는 진흙이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서쪽 바다를 상상했다. 그 앞에 텐트를 치고 앉아 발 끝에 미세하게 일렁이는 파도를 보았다. 질퍽한 진흙에 맨 몸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돌아 앉아 진흙 사이 알알이 박힌 돌들을 만지기도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한참 바라보다 누군가 나의 옆에 있음을 눈치채 고개를 돌렸다. 검은 실루엣의 옆모습, 그리고 그의 무릎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하염없이 작은 존재였다. 나는 그저 홀로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어두운 조명 사이 우리는 무릎이 닿도록 앉았다. 눈을 꼭 감고 있으라는 외계인의 분주한 발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진득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옷깃이 마구 스치는 소리가, 발이 땅에 부딪혀 울리는 진동이 들려왔다. 어떤 춤을 추고 있는지 그 모습이 꼭 보이는 것만 같아 자꾸만 입꼬리가 실룩댔다. 외계인은 다른 지구인을 툭 치고는 내 옆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다른 지구인은 화답이라도 하는 듯 일어나 춤을 췄다. 한쪽 어깨가 내려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다른 쪽 어깨는 마침내 자신의 차례를 맞이했고 두 어깨는 시소 타기를 반복했다. 이토록 신나는 음악에 저토록 여유로운 움직임이라니 그 모습이 꼭 그의 성격과 닮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만족한 숨소리와 함께 내 어깨를 툭 쳤다. 출 줄 아는 춤은 딱히 없지만 나는 열심히 발을 굴렀다. 빠르게 구르고 싶었다. 캉캉처럼 정박에 발소리를 내다가 또 엇박으로 변주를 주기도 했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를 듣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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