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극의 막을 내리며
눈앞에 검은 암막이 보였다. 귀에는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외계인은 간절히 바라는 걸 떠올린 뒤 앞에 있는 암막을 들추고 들어가라고 말했다. 나는 단번에 떠오른 무언가를 품에 안고 암막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에는 거울과 짧은 글이 적힌 쪽지가 하나 있었다.
‘이제는 온전히 여러분만의 시간입니다.
거울을 보고 나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이 순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합니다.
생각이 났으면 문을 열고 나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럼, 이제 거울 속의 나를 보세요.’
‘이 순간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사이로 마음이 새어 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봤다. 곱슬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어쩐지 초점을 잃은 눈, 그 아래 촉촉한 입술, 그리고 힘없이 축 처진 어깨까지 시선이 닿았다. 나는 나를 곧게 쳐다볼 수 없겠다고 느끼자, 고개를 다시 떨구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울음을 참았다. 그러나 곧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거친 숨소리가 적막을 깼다. 나는 그것을 감추려 호흡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두 번 세 번 올리며 괜찮다고 말했다.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외계인과 지구인이 생각났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암막을 걷고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나의 예전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어.” 지구인은 안타까운 숨을 한 번 내쉬고 나를 꼭 안았다. 외계인도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토닥였다. 그리고 함께 말했다. “너의 예전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어.” 외계인은 자신이 준비한 놀이가 여기 까지라며 방을 나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되었어.”
울음 참은 말을 건네고, 숨결에 담긴 작은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꽉 잡으며 서로의 긴장을 달래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춤을 함께 췄던 모든 순간이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되었다. 후련했다가 슬퍼졌다가 즐거웠다가 아쉬워진 이 마음도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될 것이다. ’어찌 됐든 모든 게 지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왔다.
그녀의 말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내 마음은 괜찮다는 말이 어울리는 상태가 된다.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면, 오직 나의 감각들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느낄 수 있고,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 앞에서 실패는 그저 지나간 일이고, 나는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도록 도와주는 인솔자, 어쩌면 정말 외계인일지도 모르는 그녀. 예술가 고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