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주인공 시점에 투영된 기적 같은 이야기, 트윈스터즈.
예상치 못했던 일을 겪거나 통계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흔히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라고 말한다. 그 예를 들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다. 오늘 아침 신문, 외국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서도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끊임없이 목격하고 경험한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야’라고 짐짓 거리를 두지만, 그 일들은 대부분 엄연한 현실이고 지금도 크고 작은 ‘영화 같은 일’들이 우리 옆을 태연히 지나가고 있다.
이렇듯 현실은 종종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그래서일까.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잘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는 창작된 시나리오보다 이야기의 힘이 세다. 허구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는 ‘진짜’라는 설득력을 어느 정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이야기 구조와 영화에서의 관점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절묘하게 서로를 도울 때, 관객은 마치 그 상황에 놓인 영화 속 장본인처럼 극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3월에 개봉한 영화 ‘트윈스터즈’도 그랬다.
부산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미국과 프랑스에 각각 입양된 사만다와 아나이스. 이들은 서로의 존재도 모르고 살아가다가 25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한다. 그 매개가 된 것은 다름 아닌 SNS. 아나이스의 친구가 유튜브에서 아나이스와 똑같이 생긴 사만다를 보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취한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서로 친구를 맺은 아나이스와 사만다는 마치 거울 같은 서로의 사진을 보며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시작한다. ‘우리 어쩌면 쌍둥이일지도 몰라!’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사만다는 그때부터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에 담는다. 과연 내가 당사자라면 그 순간에 카메라를 들 수 있었을까? 영화 같은 사건을 맞닥뜨린 동시에 이것이 기록할 만한 멋진 콘텐츠임을 직감한 사만다의 영화적 성실함 덕택에 우리는 자매가 온라인에서 나누었던 첫 대화들, 화상채팅으로 처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던 순간, 런던에서 처음 만나 탐색하듯 서로의 눈, 코, 입, 손을 살펴보던 모든 과정들에 초대된다. 그리고는 그 기적 같은 이야기에 기꺼이 증인이 된다. 앞에 스크린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트윈스터즈는 그러한 현장감 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적 방식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중간 중간 재기발랄하게 삽입된 메신저 창이나 애니메이션들은 그녀들이 SNS로 소통하고 다양한 시각적 채널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세대임을 짐작케 한다. 대규모 제작팀이나 거창한 장비 없이도 꽤 완성도 높은 영상을 구현한 사만다 푸터먼은 사실 이 영화로 처음 감독 데뷔를 했다. 다양한 시각적 표현, 사건을 바라보는 적당히 긴장된 관점, 그리고 절묘하게 흐르는 영화 음악(자매가 처음으로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흐르는 바버렛츠의 ‘가시내들’은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듯 경쾌하고 즐겁다) 등은 감독으로서의 사만다가 기대되는 지점들이다. 사만다와 아나이스가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시점부터 런던에서 처음 조우하던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한 공동 연출 라이언 미야모토의 공력도 엿보인다. 의도한 것일까? 극의 전반부에 각기 다른 프레임으로 분할해 등장하던 사만다와 아나이스는 런던에서의 조우를 기점으로 한 프레임 안에 담기기 시작한다. 침대에 같이 누워 있는 장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 데칼코마니처럼 대칭되는 그녀들의 움직임은 마치 엄마의 몸 안에서 함께 연결되어 있던 태중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더불어 입양인으로서 존재의 근원을 궁금해하던 둘이 지금이라도 서로를 확인하고 함께 있을 수 있음에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입양이라는 그녀들의 이력에 나 역시 일말의 책임이 있었던 것처럼.
지극히도 사적인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예매 시작 3분 만에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페이스북이 1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10가지 이야기에 오르며 CNN, ABC, NBC 등 외국 유수의 언론 매체에 소개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입양이라는 소재를 밝게 풀어냈다거나 SNS의 순기능을 제시한 영화라는 평가는 그야말로 피상적인 리뷰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방점은 입양이라는 현실이나 SNS를 통해 만난 극적인 계기가 아닌, 어떠한 의도치 않은 현실을 겪은 이들의 이후 삶에 관한 태도에 찍힌다. 자신이 겪은 상황을 현명하게 받아들일 줄 알고 그와 동시에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하는 두 자매의 곧고 유쾌한 시선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더불어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풀어낼 사만다의 두 번째 작품 역시 기다려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렇듯 솔직하고 유쾌하게 구현했다는 것은 그녀가 탁월한 화자이자 연출가라는 명확한 증거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