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그리고 생각
말과 글은 당연한 말이지만
생각에서 출발한다.
1.
생각이 없으면 말과 글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말하지 않고, 쓰지 않는 게 낫다.
이때 해야 할 건 그저 생각이다.
2.
생각이 많으나 깊지 않으면 말과 글이 뚱뚱해진다.
중언부언, 구구절절, 단어는 많은데 기억에 새겨지는 문장이 없다.
살집은 많은데 허약한 체질이 되는 것이다.
이럴 땐 생각을 하나로 좁혀 깊이 파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파 내려간 구멍 안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깊이란 순발력의 대상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3.
생각이 무르익어 깊어질 때는
글을 쓰고, 퇴고하고, 또 쓴다.
깊어진 생각을 글로 옮기고 나면 혼자 힘으로도 그 깊이를 갱신할 수 있다.
머릿속 활자인 생각과, 눈으로 보이는 활자인 글은 같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글은 나 스스로 객관화해 볼 수 있다는 것. 글이 가지는 물성 덕이다.
이왕이면 퇴고는 하루나 이틀 정도 글을 묵혀 둔 뒤 한다. 그래야 적당한 거리가 생긴다.
4.
생각과 말과 글이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엉망일 땐,
걷는다.
천천히 타박타박 몸을 움직이며 세계를 바라본다.
익숙한 동네여도 좋고 낯선 어딘가여도 좋다.
걷다가 지치면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본다.
목줄을 잔뜩 당기며 뛰어가는 강아지도 본다.
그렇게 걷다가, 보다가, 걷다가 하다 보면
연두색 생각 하나가 척박한 머릿속을 비집고 툭 튀어나온다.
다시 생각할, 말할, 글을 쓸 동력이 생기는 순간이다.
어제는 뚱뚱하게 말을 했다.
오늘은 구멍을 파고 들어가려다가 흙을 다시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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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야겠다, 내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