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를 오해하는 방식에 대하여
「(...) 제겐 결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별력의 부족에서 오는 결점은 아니라는 거죠. 성격에 대해서는 장담 못하겠어요. 잘 굽힐 줄 모르는 편이라고는 생각해요. 세상살이를 편하게 하기에는 너무 굽힐 줄을 모르지요.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나 사악함, 혹은 내게 불쾌하게 구는 것, 이런 것들을 빨리 잊어버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누가 어떤 노력을 해도 내 감정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어쩌면 화를 쉽게 풀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해야겠지요. 한번 잘못 보이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건 정말 결점인데요!」 엘리자베스가 외쳤다. 「한번 화가 나면 달랠 수 없다는 건 정말 성격상 결함이에요. 하지만 본인의 결함을 그렇게 잘 표현하셨으니, 정말 놀릴 수가 없겠네요. 저한테선 안전하십니다.」
「사람들의 성격에는 최고의 교육으로도 잘 극복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단점으로 기우는 성향, 타고난 결함 같은 것이 있나 봅니다.」
「그리고 당신의 결함은 모든 사람들을 싫어하는 경향이고요.」
「그리고 당신의 결함은 고의로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만과 편견 - 열린책들
(민음사버전과 열린책들 버전을 같이 보고 있습니다)
두 남녀의 대화가 묘하다.
얼핏 썸이 이루어지는 순간 같지만
오만과 편견이 오해를 일으키고 있다.
다아시는 성격적인 태도로 '오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재치와 유머로 '편견'을 숨기고 있다.
오만하다 평가받는 남자는 이해받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지만 편견을 품고 있는 여자는 상대의 남자를 “모든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으로 단정해 버린다.
다아시는 사람을 무시하는 오만한 인물이 아니라,
자기 기준이 지나치게 단단해서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게 결국 오만이라면 어쩔 수 없다.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유머와 지성에 가려져 알아채기가 어렵다. 참 피곤하게 말한다.
우리는 말의 진짜 뜻을 각자의 성격에 따라 포장하거나 왜곡하며 사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상처받지 않으려 강한 척하고
어떤 이는 속마음과 달리 말을 뾰족하게 해서 상처를 낸다.
오해는 그렇게 싹튼다.
글을 쓰다 보니 처음 생각과 다르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이 두 남녀의 대화는, 썸이 싹트는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마음이 열릴 수 있는 순간에,
이미 가지고 있는 각자의 인식이 서로에게 문을 닫아버리는 장면인 것이다.
앞으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는 이런 대화를 몇 번이나 더 주고받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남녀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며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게 될까.
이 장면을 읽으며 나 역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성격적 결함은 내 진심을 어떻게 왜곡해 왔을까.
내 안의 어떤 고정된 인식이 수많은 가능성을 미리 배제해 버렸을까.
우리는 흔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하지만,
사실 그 ‘그대로’라는 것조차 수많은 방어와 습관, 고집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다아시의 오만도, 엘리자베스의 편견도 결국은 상대를 단순하게,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고 불편한 일이다. 가능한 일인지 조차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틀 안에 가둔다.
오만과 편견은 그렇게 서로를 닮아간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유독 ‘나 자신 바로 알기’를 말하는 건 아닐까.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