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생각한 위선의 얼굴들
그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행동에는 자존심이 깔려 있으니까요. 또 바로 그 자존심이 그 사람의 둘도 없는 벗 노릇을 해준 것도 사실이지요. 어떤 다른 감정보다도 자존심이 그나마 선한 행동 비슷한 거라도 하도록 해주었거든요 그러니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없지요. 또 그 사람이 제게 한 행동 뒤에는 자존심보다 더 강한 다른 충동이 깔려 있었고요. -118p. 민음사-
위선적인 인간이 위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위컴은 자존심을 마치 도덕의 대체물처럼 말한다.
자존심은 종종 도덕의 자리를 대신한다.
선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 바른 선택을 하는 순간들이 있다.
부끄러움이 기준이 되고, 체면이 최소한의 윤리가 되는 때다.
완전한 선은 아닐지라도, 자존심은 인간을 최소한의 선 쪽으로 밀어 넣는 힘을 갖는다.
그 사람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런 태도 역시 일종의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선 또한 선의 범주 안에 놓일 수 있다고 믿는다.
적어도 그것은 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선택된 가면이기 때문이다.
다아시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고,
자기 통제력과 품위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이 자존심은 그로 하여금 경솔하지 않게 하고,
적어도 쉽게 악으로는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문제는 그 자존심이 타인을 향할 때다.
다아시의 자존심은 자기 규율로 작동할 때는 미덕이지만,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로 바뀌는 순간 오만이 된다.
그는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지는 않지만,
이미 마음속에서 사람들을 서열화한 채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는 결국 무례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자존심은 나를 지키는 감정이지만, 오만은 타인을 내려다보는 태도다.
자존심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오만은 타인에게 가혹하다.
하지만 내가 읽으며 가장 가혹하다고 느낀 것은, 이들의 험담이다.
이 모든 판단이 제삼자의 입을 통해 유통되는 방식이었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단순히 위컴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가 하는 말과 태도가 너무 익숙해서 불편했다.
남의 행동을 ‘이해하는 척’ 설명하면서 사실은 평가하고,
도덕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과연 자신이 한 말들에 책임을 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