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비판하는 나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콜린스의 청혼 장면에서 시작된 자기 검열

by Nova G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매력적이십니다!" 그는 신사답게 군답시고 어색하게 외쳤다. "그리고 당신의 훌륭하신 부모님께서 함께 명백한 부모의 권위로 제 청혼을 허락해 주신다면, 그때는 당신도 제 청혼을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같이 자기기만적인 외고집을 상대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고 판단되어. 엘리자베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즉시 물러났다.

_158. 민음사


둘의 대화를 보고 있자니,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끼리 줄다리기를 하는 듯하다.
그야말로 편견 vs 편견이 맞부딪히는 순간이다.

그동안 다아시의 말을 받아치는 엘리자베스가 참으로 얄미웠는데, 이 장면에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의 대화법이 어떤지, 엘리자베스도 한 번쯤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일종의 거울치료처럼.

콜린스는 지금 청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 어디에도 사랑은 없다.
그가 ‘청혼’이라는 형식을 빌려 내뱉는 말들은 계급, 부모의 권위, 사회 질서에 대한 확신과 같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콜린스는 여성은 결국 설득되거나 압박하면 응하게 된다는 편견 속에 있고,
엘리자베스는 이런 종류의 사람은 말로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편견을 즉각적으로 확정한 채 대화를 회피한다.

그래서 둘 다 불쌍하다.

누구도 완전히 옳지 않고, 누구도 상대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나는 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엘리자베스를 향한 편견 가득한 사심을 품은 채 이 책을 읽고 있다.
영화는 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왜 이렇게 엘리자베스가 자꾸 싫게만 느껴지는지 곱씹다 보니,
나 또한 편견을 가진 채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나 역시 콜린스나 엘리자베스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소름이 끼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들은, 그리고 나는, 그리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각자의 편견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걸까.
편견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생각하다가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지막에 상연이 했던 말이다.

“아이가 한 번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그렇게 돼 버리는 거야.”

그때는 그저 어린 시절의 한 생각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이 말은 편견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 문장이었다.
결국 각자가 가진 편견은, 각자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콜린스도 콜린스지만,
이제는 엘리자베스의 결핍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편견을 만들어냈는지 생각하며 이 책을 조금 더 천천히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돌아봐야겠지.
나는 어떤 결핍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있는 걸까.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5화자존심은 언제 도덕이 되고, 언제 오만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