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무엇으로 대체되었고,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by Nova G


엘리자베스는 응접실에 있는 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
"그 서재야 좋을 수밖에 없지요."그가 대답했다. "몇 대에 걸쳐서 꾸며진 것이니까요." (...)
"요즘 같은 시기에 가문의 서재를 돌보지 않는다면, 이해가 안 갈 일이지요."

55P. -민음사



오만과 편견 속에서는, 서재를 가꾸고 책을 사 모으는 일은 그저 개인의 취향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에 가까웠다. 몇 대에 걸쳐 책을 모으고 돌보는 일은 자연스러운 가문의 의무였고, 서재는 그 집안이 축적해 온 시간과 사고의 깊이를 증명하는 공간이었다. 다이시의 서재를 잠시 상상해 보았다. 아주 많이, 심하게 부럽다.


물론 그 시대를 그대로 동경할 수는 없다.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더 나은 혼인을 위해, 오로지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교양을 쌓아야 했던 현실은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책이 개인의 장식품이 아니라 집안의 품격이자 미래를 위한 유산이었던 태도만큼은 부럽다. 책을 모은다는 행위 자체가 존중받던 문화, 잘 가꿔진 서재로 가문이 신뢰받던 사고방식 말이다.


나는 책 사는 걸 좋아한다. 마음 편히 나를 멈추게 하는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기 위해 가능하면 책을 사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책을 사지 않는다고 한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출판사 대표님들의 하소연이 늘었다.


요즘 세상에서 책은 무엇으로 대체되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상이다.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는 책 보다 훨씬 빠르게 정보를 전달한다. 한 권의 책이 요구하던 시간을 몇 분으로 압축한다. 접근성은 높아졌고, 지식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렸다. 분명한 장점이다. 이런 장점들 속에서 읽지도 않을 책을 사는 일은 괜히 죄책감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머무는 시간을 잃었다. 책은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남기지만, 영상은 다음 장면으로 쉼 없이 밀어붙인다. 이해는 되지만 사유는 얕아지고, 기억은 남지 않는다. 알고 있다는 착각만 쌓인다.


인터넷 검색이나 ai 역시 책을 대체했다. 궁금한 것은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된다. 책을 통해 멀리 돌아가던 사고의 과정은 사라지고, 우리는 결론만 소비한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생각의 맥락은 점점 희미해졌다. 질문을 키우는 힘보다 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중요해진 셈이다.

이것 저건 궁금한 게 많은 초등학생 아들에게 "사전을 찾아봐라.", "책에서 찾아봐라."라고 말을 하는 나도 가끔 의문이 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 ai를 너무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요약과 리뷰 또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또한 독서의 또 다른 대체물은 아닌지? 타인의 독서가 나의 독서를 대신한다. 늘 시간이 부족한 요즘, 핵심만 알면 충분하다는 듯 책은 끝까지 읽을 필요 없는 것이 된다. 시간은 절약되지만, 그 책이 나에게 말을 걸 기회는 사라진다. 독서는 경험이 아니라 정보 습득으로 축소된다.


이 모든 대체물들은 유용함에 틀림이 없다. 더 빠르고, 더 가볍고, 더 친절하다. 하지만 책이 사라지며 함께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각의 속도일지도 모른다. 느리게 읽고, 문장을 곱씹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오래 붙잡는 시간. 책은 우리에게 사고가 자라는 시간을 충분히 허락했었다.


책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불필요한 것처럼 취급될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장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아야 할 것들 인지도 모른다. 책은 정보를 주는 도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통째로 건네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이름이 찍힌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서재를 돌보지 않는 일은 이해할 수 없다던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책을 산다. 언젠가 다시, 책을 모으는 일이 한 집안과 한 시대의 태도가 되는 날이 올 것만 같다. 나의 예스 24 장바구니에는 1,147,500원어치의 책이 담겨있다.


음, 일단 돈이 많아야겠다.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뒤늦게 생각이 들었다.

기품 있고 삶의 결을 중요시 하는 가정에는 여전히 서재가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문화는 바뀌었지만 생각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뀌지는 않았나보다.
어쩌면 변한 건 서재가 아니라, 서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우리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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