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다아시도 편지를 썼을까?

속도가 진심을 앞질러버린 시대의 언어

by Nova G
이 모든 사실을 왜 어젯밤 당신께 말씀드리지 않았는지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저 자신도 너무나 흥분해서 어디까지 진실을 밝혀야 하고 또 밝혀도 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 287p. 민음사.


다아시는 리지를 다시 찾아와 말을 하지 않고 편지를 썼다.

흥분으로 가득 찬 밤에서 한 발짝 물러나, 즉각적인 대면 대신 글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었고, 자기 방어로 읽힐 위험도 있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진심을 글로 남겼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사실을 정리하고, 오해와 진실을 구분해 가며 써 내려간 편지였다.


그 편지를 리지는 읽고 또 읽는다.

거의 외울 만큼 반복해서 읽으며, 그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믿어왔던 착각, 언니를 향한 은근한 비웃음, 타인을 판단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의심하지 않았던 태도까지.

편지는 다아시를 설명하는 글이었지만, 동시에 리지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었다.

그녀는 비로소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쓰기는 그런 힘을 가진다.

쓰는 사람에게는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볼 시간을 준다. 과장된 마음, 불필요한 분노와 억울함을 덜어내고, 무엇이 진짜 말해야 할 것인지 가려내게 한다.

상대에게 쏟아내고 싶은 감정을 그대로 던지는 대신, 책임질 수 있는 언어로 정리하게 만든다.

그래서 글은, 쓰는 사람을 사람을 종종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데려간다.


다아시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하는 여자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의 편지는 관계를 단번에 회복시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진실이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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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해 보았다.

다아시와 리지가 사는 세상이 2026년이라면, 그래도 그는 편지를 썼을까.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기다리는 법과 생각하는 법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가 돌아서 나갔다면, 그녀는 전화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버리는 게 어딨 냐고 따졌을 것이다. 아니면 성급하게 메시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읽자마자 답을 요구하는, 지금 당장 설명하라는 요구들 속에서 진실을 가다듬고 전할 타이밍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편지가 사라진 시대가 많이 아쉽다.


편지는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쓰는 사람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읽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일 여백을 남겨둔다.

말이었다면 중간에 끊겼을 이야기들이, 글에서는 끝까지 읽힌다.

감정이 감정으로 맞부딪히기 전에, 한 번쯤 멈춰 서서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요즘 우리는 너무 빨리 말하고, 너무 빨리 답을 원한다.

‘왜 답이 없냐’는 질문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보다 앞선다.

그 속도 속에서는 진심보다 반응이 중요해지고, 생각보다 표출이 먼저 튀어나온다.


다아시가 편지를 썼기에 리지는 자신을 의심해 볼 수 있었다.

전화였다면, 메시지였다면, 그의 이야기는 끝까지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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