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뒤에 숨은 말의 의도에 대하여
근데 난 말이야, 그분을 단호하게 싫어하는 것으로 남다르게 똑똑하게 굴려고 했던 거야. 아무 근거도 없이 말이야. 그만큼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천재를 발휘할 힘찬 박차를 얻게 되고, 위트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지. 욕만 바가지로 퍼붓기만 하고 정당한 말은 하나도 못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계속 비웃다 보면 가끔씩은 뭔가 재치 있는 말이 얻어걸릴 때가 있게 마련이지.
-315p. 민음사
오늘 엘리자베스의 말과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감정과 판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끝까지 되묻고 인정한다. 나아가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인정하는 데서 물러서지 않고, 그 깨달음을 통해 이전의 확신을 수정할 용기를 보인다. 엘리자베스의 성찰이 깊은 이유는 그녀가 언제나 옳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속에서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한 문제가 있다.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천재를 발휘할 힘찬 박차를 얻게 되고 위틀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저는 이 부분 번역이 많이 어색하다 느꼈습니다.)
TV 토크쇼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종종 묘한 불편함이 밀려온다. 패널들이 남을 비하하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장면 때문이다. 상대의 실수를 은근히 폭로하거나, 여자 출연자들 사이에서는 성형 사실을 웃음거리로 삼기도 한다.
내가 본 장면 중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함소원이 박명수의 아내에게 “남편의 저런 모습(늙은 모습)이 아직도 남자로 보이냐”고 묻고 깔깔대며 웃던 순간이었다.
남을 비하하며 웃음을 사는 개그는 즉각적인 반응을 쉽게 얻는다. 듣는 이들의 웃음이 커질수록 말을 한 사람은 순간적으로 더 영리해진다. 하지만 유머의 정체는 개그라기보다 타인을 아래에 두고 우위에 서는, 상대를 낮춤으로써 자신을 높이는, 가장 값싼 방식의 과시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종종 너무 쉽게 '용기 있는 비판'으로 오인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조롱하고 대중의 호응을 얻은 말은 마치 본질을 꿰뚫은 것처럼 높은 통찰력으로 평가받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날카롭다고 믿는 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사실은 혐오에서 출발한 것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웃음을 얻기 위해, 인기를 얻기 위해, 혹은 조금 더 똑똑해 보이기 위해 타인을 희화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판단해야 한다.
엘리자베스의 태도가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그 질문을 끝내 자신에게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