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삶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게 되는 마음

엘리자베스는 솔직한 걸까, 오만한 걸까

by Nova G
자기에게 얼굴 붉힐 필요가 없는 친척이 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었다.
-353p. 민음사

엘리자베스는 두 동생들과 어머니를 창피하게 여긴다. 아버지는 교양이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것이 언니 제인이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점 역시 인정한다. 반면 외숙모와 외삼촌에 대해서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진다.

나는 엘리자베스의 이런 가족에 대한 평가가 많이 불편했다.

자신을 기준으로 가족과 친척들을 평가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품위를 깎아 먹는 사람들, 더 나아가 자신과 언니의 결혼에 장애물이 되는 사람들로 구분하려는 사고방식과 태도가 상당히 오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은 엘리자베스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지나치게 솔직할 만큼 낱낱이 드러내 놓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엘리자베스와 비슷한 생각을 어느 정도는 품고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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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남편에게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감정을 자주 느꼈다.

남편은 친척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비교해 자신과 형, 누나를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많이 답답했다. 기준을 엉뚱한 곳에 두고 평가하는 것이 속상했다. 내가 보기에는 남편과 남편의 형제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평가의 끝에서 시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의 이야기를 곱씹어 들어보면, 그 안에는 확실한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이런 집안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친척들의 성취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의 품위를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평가 기준이 못마땅했다. 사촌들이 아무리 잘나 봤자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것이고, 그들의 지위를 덕보고 살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댁 모임 때마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시사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분이 남편이 말하던 그분이구나. 딱 봐도 고상해 보이고 말투도 품위가 있네.

아, 저 사람이 그 변호사라는 분이구나. 생각보다 훨씬 소탈하네.

아, 저분이 그 의사라는 분이구나. 재치도 있고 다정하기까지 하네.

그렇다.

나는 남편이 말해주던 사회적 지위의 틀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사촌들 중 한 사람은 ‘그가 나의 친척’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내 어깨를 조금 으쓱하게 만든다.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내가 불편하다고 여겼던 엘리자베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하고, 가능하다면 그 품위가 조금은 더 반짝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 반짝임이 때로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안과 친척을 통해 증명되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나 엘리자베스 개인의 결함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학습해 온,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마음일까.

나는 이제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혼자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이 속한 가족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부심이 되고, 누군가는 숨기고 싶은 얼굴이 된다. 그 마음이 반드시 고결할 필요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비난받아야 할 만큼 비인간적이지도 않다.

엘리자베스가 오만해서라기보다 너무 솔직했을 뿐이라면,

나 역시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솔직함이 곧 사랑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두 동생들과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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