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지 않고 무례를 다루는 법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들에 대하여

by Nova G
그녀는 오로지 엘리자베스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심기를 건드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아시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는 감정을 내비치게 만들고, 나아가 그녀의 가족 중에 몇몇이 그 부대와의 접촉을 통해 저질렀던 온갖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짓들을 그에게 환기시켜 주고자 했던 것이다. -371.
그러나 노한 사람이 늘 슬기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 373. 민음사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데서 쾌감을 느낄 때.

그 감정은 언제나 교묘하게 계산되어 있고, 그래서 더 유치하다.


“그녀는 오로지 엘리자베스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심기를 건드려놓을 생각이었다.”


상대를 화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굳이 사실일 필요도, 진실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그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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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던 시절, 나보다 두 살 많은 남자친구에게는 이미 졸업한 여자 동기들이 있었다. 사회인이었고, 나보다 분명 ‘어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은 나를 보고 싶어 했다. 내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니 궁금하다며, 굳이 친구들과 놀고 있던 나를 불러냈다.

거절하면 남자친구 입장도 우스워질 것 같아서, 남자친구와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내 남자친구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나를 보더니 아주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귀엽네"

짧은 인사, 짧은 웃음. 그리고 관심의 철회.

이후의 장면은 이상할 만큼 또렷하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 여자는 내 남자친구 옆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와 마주 보고 앉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그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앞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 여자가 의도적으로 내 남자친구에게 스킨십을 하고 말도 엄청 애교 있게 하는 게 느껴졌다.

음식을 먹다가 가슴에 흘린 걸 남자친구한테 닦아 달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그 여자의 그런 행동을 본체만체했다.

그 모습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그제야 그녀들이, 정확히 말하면 저 여자가 왜 나를 불렀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 생각을 하니 너무 불쾌해서, 그 앞에서 망신을 좀 주고 싶었지만,

상대가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 시절엔 한두 살만 많아도 왜 그렇게 깍듯하게 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말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남자친구는 나를 따라 나왔지만, 나는 그냥 재밌게 놀다가 연락하자며 그를 뿌리치고 돌아섰다.

사실 그날 그는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고, 내가 친구들과의 약속을 택한 것을 못내 서운해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내가 그날 그녀의 태도에 화를 냈다면 어땠을까.

그런 무개념 무매너 행동은 그 자리에서 응징을 했어야 맞을까.

누가 봐도 나를 대놓고 무시한 게 맞는데 내가 너무 가마니로 보였나 싶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즉각적인 만족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판이 짜여 있었다.

더 성숙한 척하는 사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어린 쪽’으로 밀려날 패자의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화를 내지 않았어도 아마 당사자가 더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유치했는지.

그리고 나로부터 아무 반응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더 약이 올랐을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언제나 솔직하다고 인정받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

때로는 침묵이, 상대의 판단대상에서 멀어지는 가장 분명한 방식이다.

그날 나는 내 분노를 쏟아낼 기회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나를 그 수준으로 데려가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오늘 글을 쓰면서 느꼈다)

노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노함에 나를 맡기지 않았다는 사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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