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은 사랑 앞에서 왜 무력해지는가
사랑이 오만을 넘는 순간
제 친구를 당신의 언니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는 걸,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성공을 거두어서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 자신보다 친구한테 더 마음을 썼던 겁니다.
-271. 민음사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나는 다아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를 늘 냉철하고 신중한 인물이라 믿어왔지만, 이 날의 고백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충동적이다. 고백을 하면서도 그는 마치 자기 행동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아시를 이해하려면, 결국 오만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오만은 자기 확신에서 출발한다.
나는 옳고, 나는 알고, 나는 판단할 수 있다는 믿음.
다아시의 오만도 바로 그 지점에 서 있었다.
그는 타인의 감정과 장래까지 계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빙리의 사랑은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위해 개입했고, 그 선택을 선의라 확신했다. 빙리의 감정보다 자신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다아시의 오만은 무력해진다.
빙리의 사랑 앞에서는 오만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오만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내 기준이 보편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앞에 서게 된다. 그의 첫 고백이 서툴고 모순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쓸모를 잃었기 때문이다.
리지는 아마도 다아시 주변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그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판단에서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아시는 처음으로 자신의 기준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 그 어떤 냉철함도 그를 막지 못했고, 그는 결국 리지에게 고백한다. 하지만 그 고백은 사랑의 요청이라기보다 거의 통보에 가까웠다. 과연 어떤 여자가 이런 방식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올렸다.
많은 엄마들이 엄마로서,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통제하려 한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고, 이 선택이 옳고 저 선택은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준을 세우고, 방향을 정해주고, 미리 막아주려 한다. 그러나 그런 통제는 늘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남편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 통제를 아이들보다 오히려 남편에게 더 많이 적용하려 했던 것 같다. 가족과 아이들을 지킨다는 이유로, 그의 단점을 고치려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다. 선의도 있었고 책임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오만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행복이 너에게도 옳다”는 믿음.
그 믿음은 관계를 살리는 약이 아니라, 서서히 관계를 망가뜨리는 독이었다.
내가 옳다는 확신과, 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사이에서 오만은 늘 무력해진다.
오만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인데, 사랑은 통제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기준이 맞다는 믿음보다 관계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낄때.
우리는 비로소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