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윅 대령은 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녀의 관심을 고맙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슬픔에 어떤 책인들 도움이 되겠느냐는 듯 회의적으로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가 추천한 글들의 제목을 받아 적고는 꼭 구해 읽어 보겠다고 약속했다. - 152p. 민음사
아무리, 신이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시련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고 하지만,
그 포장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버거울 때가 있다.
그 포장지 안에 선물이 들어 있는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 좌절하고, 주저앉는다. 그러니까 인간이겠지. 인간 따위가 그걸 어떻게 한 번에 깨닫겠는가.
한동안 마음이 너무 힘들 때, 나는 그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설교 말씀을 찾아들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주제와 맞닿은 내용으로 골라서.
불안과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던 밤도, 유기성 목사님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스르륵 잠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면역이 생긴 걸까. 이제는 별다른 효력이 없다.
나는 대체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는 고민하거나 불안해하기보다 기도하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 혼란스러운 마음이 정리가 안될 때는, 책을 선택한다.
책 속으로 마음을 피한다.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속에 숨어버리기.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책 속 문장들 사이에 나를 숨긴다. 어젯밤에도 그 방법을 선택했었다.
누군가 말했다. 나의 불행을 잠재우는 가장 큰 위로는 타인의 불행이라고.
어제 읽은 책은 신달자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였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을 이해했다.
나는 간사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 덕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래도 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구나.'
'이 정도의 불운에 비해면 나의 괴로움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구나.”
나의 불안은 어느새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신달자 선생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분명히 깨달았다.
아, 시련이 선물이었음이 분명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끝내 한 가지에 도달한다.
이렇게 각자의 삶에 새겨진 고유한 서사야말로 이런 훌륭한 글을, 이런 훌륭한 책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닐까.
각자의 삶에 새겨진 고유한 서사는 고통조차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남는다.
그래서 어떤 삶은 끝내 한 권의 책이 되고, 어떤 시간은 말해지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