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때로는 남의 설득을 받아들일 줄 아는 성격이 단호한 성격만큼이나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가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175. 민음사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앤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과 웬트워스 중 누가 더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사실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앤은 단호하지 못해서 설득에 흔들린 사람이 아니었을까.
‘남의 설득’이라는 말을 나는 ‘조언’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조언을 구하고, 또 듣는다. 그리고 그 조언들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나는 조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조언의 이면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조언은 책임지지 않는다.
조언은 대체로 가볍게 건네지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전부 당사자의 몫이다.
믿어도, 망해도, 버텨야 하는 쪽은 늘 조언을 들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언을 건네는 사람은 자신의 말에 얼마나 큰 무게가 실리는지 알지 못한다.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언은 대체로 ‘무난함’을 향한다. 실패를 줄여준다는 이유로 조언을 하지만, 정작 그 길이 상대가 정말 원하는 삶의 방향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조언은 말한 사람의 과거를 담고 있다.
조언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반복이거나 번복일 때가 많다.
대개 “내가 해봤는데”, “내가 겪어봤는데”라는 말로 진실인 듯, 불변의 진리인 듯 속인다. 조언하는 사람은 속이려는 의도로 하는 말이 분명 아니겠지만, 조언의 말은 우리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대도, 환경도, 성격도,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른데 같은 결말을 기대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도 없다.
조언은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다들 그렇다더라”, “남들도 다 그렇게 해” 이런 말을 마음에 들이는 순간, 마음은 잠시 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왜 나는 이걸 고민했지?’, ‘왜 이렇게 망설였을까?’와 같은 자기 자신에게 던져야 했던 질문들은 멈춘다. 가장 중요한 직감이 조용히 사라진다.
조언을 많이 들을수록 스스로 결정하는 마음의 근육은 점점 느슨해진다. (내가 볼 땐, 앤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처럼 보인다.)
조언은 실패를 금기시한다.
이것이 내가 조언에 가장 경계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다. 대부분의 조언은 상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넘어지지 않게, 실패하지 않게 막아준다. 하지만 어떤 실패는 반드시 필요하다.
실패를 피하는 순간, 꼭 필요했던 성장까지 함께 피해 가게 될지도 모른다.
조언은 안전해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안전지대 밖에서 성장한다.
그러니까 나 자신아. 아이들에게 조언하지 말자.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으로 줄이자. 아이들의 실패를 응원하는 엄마가 되자.
잔소리 좀,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