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의 곁에서 발견한 앤의 태도
하지만 메리는 그의 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은 기색이 아니었다. 가문이나 재력으로 따져 보아도 그가 엘리엇 가의 딸을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어퍼크로스의 매력이 자기보다 앤에게 있었다고 믿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 190p. 민음사
내내 메리가 참 얄밉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메리가 나르시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벤윅 대령이 앤과 진지하게 대화하고, 분명히 지적인 공감이 오가고 있는데도 메리는 (자기가 뭐라고) 그 관계를 단칼에 잘라버린다. 그럴 리가 없다면서, 말도 안 된다고.
그 말 안에는 이런 감정이 섞여 있을 것이다. '앤이 그렇게 매력적일 리 없어. 벤윅 대력의 취향이 앤 일리가 없어.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이렇게 굴러가야 하는데 그럴 리가 없어.'
그런 메리가 정말 몰라서 그렇다기보다, 타인의 매력이나 빛을 축소하고 왜곡시킴으로써 자기 생각을 고수하고 지키려는 아주 못된 태도로 보인다. 메리가 유독 더 얄밉게 느껴지는 이유는, 메리의 반복되는 그런 말과 태도에도 앤은 결코 설명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변명도 하지 않고 과시도 하지 않는다. 그냥 늘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하며 사람들 옆에 서있을 뿐이다.
그동안 앤은 줏대 없이 이리저리 설득당하는 캐릭터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오늘 메리와 상대적인 앤의 태도를 보면서 오히려 앤의 태도가 타인을 더 강하게 설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말을 이기는 건 태도인 법이다.
메리는 가벼운 말로 확신에 차 있지만 앤은 조용히 존재한다. (그녀의 속마음은 시끄러울지 몰라도)
주변을 둘러보라, 주변에 메리와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꼭 한 명은 있다. 아니면 우리도 살면서 한 번쯤은 메리처럼 굴었을지도 모른다. 메리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메리처럼 굴고 싶은 마음을 이기며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앤이 끝내 보여준 가장 단단한 설득이었을지도 모른다.
설득이란,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이기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 서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