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여름 끝자락, 남편은 군인이라는 직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와 동시에 거북이 두 마리를 우리 식구로 들였다. 같이 근무하던 사람이 키우던 거북이 두 마리를 입양해 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반대를 했었다. 생명을 집에 들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벌써 그 끝을 헤아리고 겁이 났기 때문이다.
"거북이 키우면서 힐링하고 싶어."
군인으로서의 삶이 지옥 같다고 말했던 남편이 힐링하고 싶다니, 나는 "힐링"이라는 단어에 지고 말았다. 우리 집에 드디어 첫 동물가족이 생긴 것이다. 큰아이는 이름을 "거북이와 북이"라고 붙여줬고, 거북이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몇 날 며칠을 어항에 달라붙어 지냈다. 오백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거북이들이 내가 보기에도 꽤 귀여웠다.
한 달 두 달, 그리고 반년정도 시간이 지났다. 남편은 점점 어항의 물 갈아주는 걸 귀찮아했고, 물에서 냄새난다고 잔소리하면 나더러 예민하게 군다고 핀잔을 줬다. 그리고 거북이들이 우리 집에 온 지 9개월 정도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과 빨래를 개며 다정하게 얘기를 하던 중, 남편이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했다.
"근데. 거북이 한 마리 죽은 것 같아." "뭐??" "죽은 것 같아. 안 움직여." "뭐? 거북이가 왜 죽어? 절대 안 죽는 동물 아니야?" "절대 안 죽는 게 어딨어 웬만해선 안 죽는다는 거지." "아니 그러니까, 그런 게 왜 죽어. 자기가 물을 너무 안 갈아줘서 질식해서 죽은 거 아니야?"
우리는 분명 다정하게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나의 말투는 급 돌변했다. 나는 거북이가 죽은 것에 대해 화가 났고 슬펐고 속상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게 다 남편 때문이라 생각했다.
"... 왜 죽었지..." "밥은? 밥도 잘 안 줬지??? 똥 싸면 물 더러워진다고 안 주더니." "아니야. 밥은 적당히 잘 줬어. 근데 왜 죽었지......" "아 속상해. 이게 뭐야 자기 힐링한다고 이기적으로 데리고 와서 죽게 만들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거야...." "이상하네. 거북이 잘 안 죽는다고. 돌볼게 별로 없다 했는데... 왜 죽었지..."
죽은 거북이를 두고 저게 할 말인가. 남편이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떻게 저렇게 감정이 없나. 남편한테 한참 퍼붓고 나니 아이들 생각이 났다. 특히 큰아이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나는 사실대로 말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생각했다. 다음날 저녁, 구현이에게 거북이 한 마리가 죽은 것을 사실대로 알리고 보여줬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침묵이 흐르는 중에 이런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세 살짜리 둘째만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다.
"구현아, 엄마 손 잡고 기도하자. 거북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고 기도해 주자."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동안 아픈 줄도 모르고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아픔 없이 잘 지내기 바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으로 와줘서 고마웠다. 간단히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는데 구현이가 울음을 참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는 모습을 나에게 들키자 얼굴이 더 일그러지면서 벌게졌다. 슬픔을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몇 초간 그러더니 결국 소리 내서 울었다. 쏘아보듯 내 시선은 남편에게로 옮겨갔다. 남편의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랐다. 눈물만 흘리지 않았지 분명 구현이와 같은 표정으로 울고 있는 듯했다. 둘이 똑같이 생겨가지고 진짜 표정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 이렇게 둘이 똑같이 슬픈 얼굴을 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았다. 남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구현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남은 한 마리는 잘 키울게. 진짜 잘 키울게."
그 말에 속으로 생각했다. '죽은 거북이한테는 안 미안 한가...? 이게 구현이한테 사과할 일인가...'
며칠 후,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함께 일하는 선생님과 우리 집 거북이 얘기를 했다. 그리고 남편이야기도 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감정도 없는지... 왜 죽었지 이 말만 반복하더라니까요."
선생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게 슬프다는 표현이에요. 그 '왜 죽었지'라는 말에 모든 죄책감과 슬픔이 다 들어있는 거예요. 선생님처럼 생각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표현할 줄 모르는 것뿐이지 슬퍼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많이 놀랬다. 선생님 말을 듣고 '왜 죽었지...'라고 말하는 남편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보니 표정이 뭔가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편은 항상 이해가 안 된다고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틀린 건 아니야. 자기야. 그럴 수도 있지.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좀 해."라고 가르치듯 말했었다.
평소에 그렇게 강조하던 '그럴 수도 있지'를 남편에게만 적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공감을 중요시 생각하고, 공감 못하는 남편에게 화내듯 "공감능력이 그렇게 떨어지는 것도 지능의 문제야!!"라고 소리치던 내가 남편의 슬픔을 공감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했다. 거북이만 공감해 주고, 거북이를 잃은 진짜 주인인 남편의 마음은 공감해주지 못했다. 공감은커녕. 속으로 거북이를 죽인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다르게 표현한다고 해서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란 여전히 많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