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듣는 지원자들 관리,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의 컴플레인, 회사의 요구사항 등등에 시달리다가 퇴근하면 일단 퇴근 자체에 대한 해방감에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해방감을 더 크게 느끼고 싶어서 그 무렵의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날도 잔업이 많아 제때 퇴근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술약속 자리에 조금 늦어서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리고 앉자마자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골칫거리인 일들도 싸악 내려가는 듯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친구 한 명이 말했다.
"괜찮니......?"
"어 괜찮아, 왜?"
"너 술 마시는 폼이, 근로자 같지가 않아."
"응? 무슨 말이야?"
"노동자 같아."
친구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그 말이 너무 웃겨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금세 씁쓸해졌다. 30대 초반의 내 모습이 그렇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펐지만 괜찮았다. 맥주를 좀 고상하고 예쁘게 마실걸 그랬구나, 하고 말았다.
"맨날 그렇게 야근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어떻게 하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내공이 쌓여서 웬만한 컴플레인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하나하나 처리하고 나면, 꽤 재밌고 뿌듯해."
"쟤도 은근히 멘탈 갑이야."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노동자 같아 보이면 좀 어떤가, 그래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는걸.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학생들이잖아? 그것도 곧 졸업을 앞둔 경우가 제일 많고, 졸업 한 애들도 많고. 종종 한국에서 회사 잘 다니다가 해외취업 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사람들 만나서 상담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배우는 게 더 많아. 요즘 애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보고 느끼게 되니까 나도 같이 젊어지는 것 같기도 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쨌든 지금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잖아. 그게 나한테 엄청난 자극이 되는 것 같아."
"그렇겠네."
"응, 그리고 일단 걔네가 너무너무 부러워. 뭐든 할 수 있는 그 시간.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 나는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되게 많이 방황하고 허송세월 보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요즘 애들은 취업난이 심각해서 그런가 학교 다니면서 별로 놀지도 않는 것 같고. 지금 대학생들 보면서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을 반성하게 된다니까."
"맞아, 우리 때가 좋았다고들 하더라. 요즘 애들 보면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해."
"그리고 아주 먼 얘기지만, 나중에 내가 아이를 키울 때도 되게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래 너무 멀리 갔다 야. 일단 결혼부터 해."
우리는 웃으면서 술잔을 비웠다. 그러면서 **대학 권예*라는 학생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들 모르는 학생이지만 야무지고 당찬 아이라며 칭찬을 했다. 노동자 같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나도 내가 좀 기특했던 순간이었다.
1년 전, 처음 <싱가포르 호텔 취업/연수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사실 이 프로그램 2기를 진행하게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 학생들만이라도 무사히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어느덧 2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1기 때 고생 했으니, 2기는 했던 대로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더는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 2기 학생들을 생각하면 크게 기억에 남는 학생이 없다. 딱 한 명 빼고.
2기는 1기 때 했던 그대로 진행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작부터 어긋났다. **대학에서 지난번처럼 똑같이 참가자를 먼저 선발해서 우리 회사에 명단을 보내왔지만, 싱가포르 현지 학교에서 사전 면접을 보고 연수 시작 전부터 참가자를 선발하겠다고 했다. 기가 막히고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가 학생들 모두 회사로 방문해서 화상면접을 진행했다. 그때 한 명이 유독 늦었는데, 심지어 시작 직전에 화장실에서 삼각김밥을 우적우적 먹고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별난 아이가 참여하게 됐구나 하고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다른 팀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리님, 화장실에서 봤어요? 삼각김밥 먹던 그 학생도 싱가포르 2기 준비하는 애 맞죠? 아니... 걔 어떻게 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금세 눈치를 챘다. 싱가포르 호텔에 취업하기엔 외모가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사전 면접을 위해서 학생들에게 간단히 예상 질문과 그에 적합한 답안 예시를 작성해서 안내하고 준비시켰지만 이 학생들이 잘해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화면만 보고 진땀을 흘리며 말 한마디 못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었고, 버버벅 애써 몇 마디라도 해보고자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삼각김밥을 먹던 학생은 자기 차례가 가까워 오자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좀 전에 다른 직원이 한 말이 신경이 쓰였다. 저 친구는 시작하기도 전에 싱가포르에 못 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민*학생, 왜 그래요? 면접 볼 수 있겠어요?"
"네 괜찮아요. 아까 너무 배가 고파서 삼각김밥 먹은 게 체한 것 같은데, 괜찮아요."
민*학생은 생각보다 꽤 면접을 잘 보았다. 내가 알려준 예상 질문에는 모두 대답을 했다. 긴장 많이 한 것 같은데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긴장이 사라지고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민*이의 작은 눈이 더 작아졌지만 반달모양으로 변했다. 아주 귀여웠다. 사전 면접이 만족스럽지 못한 채로 끝났지만 내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은근히 민*학생이 걱정됐다.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싱가포르 호텔 취업분야에 뛰어들어 괜한 상처를 받게 되진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었다.
1기 학생들이 했던 절차대로 2기 학생들도 무탈하게 출국하고 연수과정까지 잘 마쳤다. 다만 이번에는 취업을 포기하고 연수만 받고 돌아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단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한 명의 행동이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안타깝긴 했지만 그들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싱가포르에서의 짧은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나는 취업률이 1기 때 보다 현저하게 낮다고 욕을 좀 먹었지만 말이다. 취업에 합격한 학생들 한 명 한 명 전화해서 축하의 말을 전했다. 주목적은 일하는 곳의 컨디션은 어떤지, 만족하는지 불만족스러운지, 혹은 부당대우를 받고 있는 사항은 없는지 등등을 살피려 전화를 하는 것이다. 민*이는 4성급 비즈니스호텔에 합격했다.
"민*아 축하해. 너무 기특하다! 화장실에서 삼각김밥 먹는 모습이 생생한데 호텔 취업에 성공했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출퇴근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기숙사를 나와서 사는 건 어떤지 물으며 통화가 길어졌다.
"버스 타고 출근해요. 한 30분 걸려요. 한 번은 출근하다가 쓰러졌어요."
너무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별거 아니라며 웃으면서 대답했다.
"매일 영어단어를 100-200개씩 외우고 공부하는데요, 제가 좀 무리를 했나 봐요."
"아니, 얼마나 무리했길래 출근하다가 쓰러져? 일 시작하면 서 있는 시간도 많을 테고 초반엔 체력조절이 얼마나 중요한데.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네 이제 괜찮아요."
나는 민*이가 유달리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어디 다닐 때마다 항상 영어단어를 외우며 다니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쓰고 있었다. 계약직 1년 차 급여도 얼마 안 되어 생활비 역시 쪼개고 쪼개서 쓰고 있었다.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지내는 거 부모님은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
"네 그냥 열심히 하는 줄만 알고 계세요. 근데요 저는 다른 사람들 하는 만큼만 했으면 취업 못 했을 거예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걸 이겨 내려면 여기서는 영어라도 다른 한국 사람들 보다 잘해야 해요."
그 말을 민*이 입에서 직접 들으니 너무 놀라웠고 짠했다. 그리고 어쩜 이렇게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 담당 학생이지만 너무 대견했다. 나는 그저 더욱더 힘내라고 지지해 주고 싶었다. '그래, 실력으로 해 냈다는 걸 끝까지 보여줘!'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버스에서 쓰러졌다니 건강이 너무 걱정돼서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집 떠나 아프면 얼마나 서럽고 힘든데, 건강이 무너지면 정신까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야.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먼저라는 걸 잊지 마."
"네 그래서 그 후로 자는 시간을 한 시간 늘렸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성인이니까 알아서 잘할 거야. 그렇지? 그래도 혹시 내가 여기서라도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통화를 마치고 나는 민*이가 너무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1기 참여 학생 중 예*만 현지에 남아 있다는 걸 기억해 내고 예*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리 선후배 관계라고는 하지만, 둘은 모르는 사이이고 개인정보라 내 마음대로 먼저 연락처를 알려 줄 수는 없었기에 예*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해 전화했다. 1기 학생들이 너무 잘해줘서 그 기회가 후배들에게도 주어졌고, 현재 2기 후배들이 막 연수과정이 끝나고 취업해서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예*가 괜찮다면 민*이라는 후배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겠느냐고. 해외생활 할 때 한국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는 것을 나는 별로 권하지는 않지만, 민*이에 대해 간단한 소개와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예*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전했다. 원치 않으면 절대로 알려주지 않겠노라고 했다.
다행히 예*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내가 더 기쁜 나머지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민*이에게 바로 다시 전화해서 예*를 소개해 줬다. 둘은 서로의 근무 스케줄을 공유하고 쉬는 날이 겹치는 날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특히 예*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며 민*이는 후에 나에게 따로 연락해 마음 써주셔서 너무 감사다고 여러 번 말했다. 괜한 오지랖을 부린 건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기라도 한 듯 나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리고 민*이의 수습기간이 끝나는 3개월 시점, 민*이는 예*가 근무하는 쉐라톤으로 이직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예*가 매니저로서 민*이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한국인 스텝을 뽑을 계획이 있었다고 했다. 급여조건도 근무조건도 더 좋고, 5성급 호텔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민*이는 엄청 기뻐했다. 나도 너무 기쁘다며 수화기에 대고 거의 소리를 지르는 지경이었다.
그때 마침 싱가포르 취업 다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겸사겸사 싱가포르 출장길에 올랐다. 회사로부터 두 학생 스케줄을 확인하고 만나서 맛있는 거 사주고 오라며 법인카드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인터뷰를 따오라는 특명도 받았다. 민*이와 예*에게 출장 일정을 전하고, 그들이 즐겨 간다는 피자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예*는 싱가포르 생활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민*이도 밝아보였다. 심지어 너무 예뻐져서 놀랄 정도였다.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외로 보냈지만, 그 후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현지에서 직접 만나보게 된 건 처음이었다. 나조차도 그 순간이 신기했다. 출국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학생들은 담당자와 지원자의 딱딱한 관계였는데 시간이 흘러 그들의 현지생활 적응기를 모두 공유하고 난 후에 만나니 너무 반갑고 기특했다. 그들의 성공을 나눠가진 느낌이었다. 관계가 편해지고 나니 우리는 여자끼리 나누는 거침없는 대화도 주고받았다.
"민*아, 너 여기 와서 성형수술한 거 아니지?"
"아니에요." 민*이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고친 건 정말 없어 보이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예뻐졌니. 표정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민*이가 딱 그 증거구나!"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죠. 얘가 꾸미고 가꾸는데도 엄청 부지런하더라고요."
옆에 있던 예*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더니 민*이는 자신이 터득한 메이크업 노하우를 신나서 이야기했다. 좁은 이마를 넓어 보이게 하는 헤어라인 관리법, 작은 눈을 돋보이게 하는 메이크업 방법, 낮은 코를 높아 보이게 하는 메이크업 방법 등등. 민*이 얼굴을 세심히 관찰하며 듣는데 예*가 또 한마디 했다.
"얘가 호텔 직원들한테 메이크업 방법도 전수하고요, 인기가 아주 좋아요."
"그러니 영어 실력이 더 일취월장했겠네!"
"근데 선생님, 과장님 됐다면서요. 축하해요."
"어 고마워. 솔직히 너희 덕도 커. 많이 먹어."
"그래도 선생님 여기까지 와서 돈 많이 쓰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괜찮아 법인카드 받아 왔어."
둘이 서로 마주 보고 키득 거리며 말하길래, 왜 둘이 쑥덕대냐고 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으면 더 비싼 데 갈 걸 그랬다고요."
그 출장은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떠난 힘든 출장이었다. 그래도 이 두 학생들을 만나서 피자를 먹던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도 힐링의 시간이었다. 서로 페이스북 아이디를 주고받으며, 여기에 소식을 자주 올려 달라, 그러면 내가 앞으로는 귀찮게 전화 자주 안 하겠노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보는 민*이는 나날이 예뻐졌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몇 달 후 나는 이직을 했다. 민*이에게 나의 이직소식을 전했고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며 지켜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예*와 민*이 덕분에 내 일에 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전했다.
이름 모를 대학교라며 명단을 전달받았던 몇 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이제 나에게는 그 어떤 대학교 보다 더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학교 소속의 누구누구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우리는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고유한 개개인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