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존재가 흔들어 깨운 우리의 삶의 방향
우리 아이들은 열 살과 일곱 살이다.
엄마로 산 지난 10년은 마치 수많은 종류의 계절이 바뀌는 끝없는 풍경 같았다.
그 안에서 나는 수 없이 웃고, 수없이 울었다.
하지만 모든 눈물과 웃음의 뿌리는 '경이로움'이었다.
고작 한 사람의 탄생이 이렇게까지 찬란할 수 있을까.
세상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가 나 혼자만도 아닌데 나는 유독 이 아이들의 존재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특히 친정 집에 가면 그 감정은 더 선명해진다.
거실에서 시끄럽게 뛰어놀고 싸우고 또 웃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이 집의 일부였다는 듯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주인이 되어 버린다.
‘쟤네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지?’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면,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엄마라는 자리’가 여전히 낯설고 신비롭다.
처음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 시댁 식구들이 아기를 보기 위해 하나둘 찾아 오셨다. 친정에서 조리할 생각으로 친정과 가까운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했기에, 시댁 식구들은 꽤 먼 길을 온 셈이다.
아주버님도 첫 조카를 보기 위해 조리원을 찾았고, 어쩌다 보니 우리 엄마랑 아주버님이랑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그때 이야기를 아직도 종종 하신다. 아주버님이 한 말이 잊히지 않고 자꾸 생각난다면서.
"너무 신기합니다. 요 조그마한 게 큰아빠,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을 다 바꿔놨어요!"
갓 태어난 아기는 한 번에 모든 이의 삶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생명의 탄생은 그런 것이다.
이토록 놀랍고 신기하고, 하루아침에 우리의 호칭을 바꿔 놓을 만큼 우리의 삶도 많이 바꿔 놓았다. 아주 많이.
3년 뒤, 둘째가 태어나면서 그 조그마한 아기는 또 오빠가 되었다.
이어서 나 역시 없던 이름들이 생겨났다.
작은엄마, 외숙모.
호칭이 새로 생기는 건 사실 ‘조용한 기적’에 가깝다.
그 모든 변화는 마치, 누군가 우리 인생에 조용히 새 페이지를 넘겨준 것처럼 찾아왔다.
지난여름, 엄마와 아주버님이 나눴던 그날의 이야기를 아주버님과 처음으로 꺼내게 되었다. 엄마에게 했던 말이 큰 울림이 되어 아직도 종종 말씀하신다고 전하니, 아주버님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 생각이 정말 많아졌었다고 한다.
**이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는데, 세상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이 아이를 위해 어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그 고민들은 결국 아주버님을 대학원으로 이끌었고, 사회복지학이라는 새로운 길로 데리고 갔다.
"**이 때문에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지원 동기에 갓 태어난 조카 이야기를 썼죠."
그때까지 아주버님은 미혼이었고 여자친구도 없었다. 그러다 대학원에서 지금의 형님을 만나 결혼했고, 이제는 아이 셋을 둔 다둥이 아빠가 되었다.
마흔이 되도록 결혼 소식이 없어 집안의 걱정거리였었는데, 내가 낳은 작은 사람이 결국 그렇게 큰 일을 해낸 셈이다.
새로운 생명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다시 존재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엄마와 아빠, 이모나 작은엄마 같은 역할을 부여받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전 버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의 호칭이 바뀌는 일은 사실 곁가지에 불과하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람의 시선이 달라지고, 마음이 넓어지고,
어른의 책임이 깊어지고,
어떤 이에게는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다시 그려지기도 한다.
아이 하나가 흔들어 깨운 질문이 결국 한 사람의 진로를 바꾸고, 인생의 반려를 만나게 하고,
지금은 세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된 존재는 손안에 가득 찼던 조그마한 생명 하나였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의 존재가 문득문득 경이롭다.
그리고 이 경이로움은 10년이 지나도, 아니 앞으로 30년, 40년이 흘러도
아마 여전히 내게 ‘처음’을 선물할 것이다.
“당신에게는 지금, 어떤 존재가 다시 ‘처음’을 열어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