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4년 준비한 미대를 한학기만에 자퇴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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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모한 성격이라 느낀 적은 없다. 여행을 가기 몇 주 전부터 좋은 추억만 남기겠노라며 온갖 장소를 서치해 저장해놓는가하면, 대학교에 가게 된다면 가능한 한 오--랫동안 휴학을 해 '사회로부터의 마지막 울타리를 최대한 늦게 넘어야지' 했었던 아이였다. 겁이 많기 때문에 일단 저질러보자라는 말은 내 삶과 거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을 기점으로 그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6년의 필수 교육과정과 4년간의 입시 중, 자퇴 절차를 배운 적은 없다. 알아보니 요즈음 휴학정도는 딸깍임 몇 번이면 가능하다던데, 자퇴는 직접 학교에 방문해야만 했다. 통학 하는 길에 동기들을 바라보자 지금까지 학교생활이 스쳐지나가며… 같은 일은 그다지 없더라.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 지루하리만한 통학길이었다.
그 날은 혼자가 아니었다. 미술학원에서 친했던 보조 선생님 겸 학교선배는 마침 시간이 맞아 그 날 자퇴 절차를 동행해주었다. 저 쌤 학교 합격했어요, 학교에서 봐요! 하며 메시지를 보냈던 날이 고작 반년 전.
그 뒤로 좀처럼 시간이 맞지 않았다가 처음으로 선후배 사이로 만난 날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아이러니. 반가운 인사도 잠시, 선배가 카페에서 기다리는 동안 자퇴 서류 처리를 서둘렀다. 난생 처음보는 자퇴서류에는 담당교수님을 포함한 총 두 분의 디자인학부 교수님들의 도장 칸이 뚫려있었다. 담당교수님이라고 해도 안면이 거의 없기에 여간 골치라 생각했다. 서류를 내보이면 자퇴 사유를 물어보실테고 그를 조리있게 설명할 자신은(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성공적인 자퇴를 위하여. 교수님들을 찾아 뵙기 위해 이리저리 미대 건물을 쏘다녔다. 교수님이 수업 중이신 다른 학과 과실 앞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참 뻘줌했다.
결과적으로 무사히 도장 2개도 획득 완료. 쾅쾅. (박수!) 예상보다 교수님들은 많은 것을 묻지 않으셨다.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는 말에도 '힘들텐데', 정도뿐이였다. 학교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에 학생들이 익명으로 설문한 교수 평가 점수가 떨어졌다며, 너네 그러다 학과가 없어진다며, 아 다만 점수 높게 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라며 열변하시던 교수님의 영향이 1프로 정도는 있었다는 건 여기에만 적어본다.
두 칸의 공란이 무사히 메꿔지고 오늘의 날짜를 적고 성명, 사인까지 마쳤다. 미대 건물 계단을 내려오며 잊지 않고 자퇴서와 함께 찍은 셀카는 지금도 잘 보관중이다. 그동안 기다려주던 선배와 함께 서류를 제출하러갔다. 미션 컴플리트를 한 서류를 내는 순간까지 행동의 막힘은 없었다. 직원분이 당시 날짜를 기준으로 환불 받을 수 있는 등록금을 계산해주셨고, 서류 또한 막힘없이 빠르게 처리되었다.
선배와 나란히 센터를 나오며 그제야 호들갑 떨었다.쌤 저 진짜 자퇴했어요! 너 진짜 자퇴했어 이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로 향하며 기분이 어떻냐고도 물어봐주던 감사한 쌤이자 선배이자 언니. 일부러 계획한 건 아니었다만 그 때 혼자였다면 아마 많은 생각에 잡아먹혔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겁이 많은 편이다.
그다지 즉흥적이지 않고 규칙을 함부러 어기지 못하는 나는 그렇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울타리를 열고 나갔다.
이제는 울타리 밖의, 눈 앞에 백지를 하나씩 채워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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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브런치에 2020-2021 발행되었던 글들 '자퇴 사용경험서'는 인스타툰과 함께 차례대로 수정되어 재발행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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